박종윤 소설가 

 

진유현의 고양 땅에 역이기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글을 많이 읽었으나 벼슬에 나아가지도 못하여 생계조차 어렵게 지냈다. 그는 관문 지기로 일하며 겨우 배를 채웠다. 

역이기는 각지에서 장수들이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고 그들이 고양 땅을 지나갈 때마다 만나 보았으나 모두 허황된 꿈만 꾸었지 지신의 웅대한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느 날 고양의 역사에 패공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역이기가 그를 만나러 갔다. 마침 유방은 여종들에게 다리를 뻗은 채 발을 씻기고 있으면서 역이기를 만나려 했다. 역이기가 도움을 주러 온 노인을 대하는 패공의 무례함을 꾸짖자 유방은 여종을 물리며 용서를 구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상석에 앉히고 정중히 맞이했다. 

역이기는 그 자리에서 예전에 여섯 나라가 합종연횡을 했던 일에 관해 얘기를 했다. 흥미를 느낀 패공은 역이기와 식사를 함께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이 좋겠소?”

“귀공이 오합지졸들을 모아서 그것을 한 덩어리로 뭉쳐놓는다 해도 만명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일만명 정도의 병력을 가지고 강력한 진나라를 친다는 것은 스스로 호랑이굴로 뛰어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곳 진유 땅은 천하의 요새이며 모든 길은 이곳을 지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 안에는 식량도 풍부합니다. 백성들은 현령의 명령에도 잘 따릅니다. 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곳부터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전부터 저는 이곳 현령과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제가 사자로서 현령을 찾아가 귀순을 전해 보겠습니다. 만일 현령이 불응할 경우에는 장군께서 공격하십시오. 저는 성 안에서 호응하겠습니다.”

유방은 역이기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역이기가 사자의 임무를 띠고 성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뒤 패공은 군사를 이끌고 성문에 다다랐다. 결국 진유의 현령은 투항하고 말았다. 

역이기는 그 공로로 광야군에 임명됐다. 그의 아우 역상도 역이기의 추천으로 장수가 되어 수천명을 거느리고 패공을 도와 서남쪽을 공략하게 됐다. 

역이기는 유세객이 되어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유세를 하고 다녔다. 

패공은 남쪽으로 내려가 영양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다시 한(韓)나라의 명문 출신인 장량(한(韓)나라 재상 출신 유방을 도와 한(漢)나라를 건국)의 도움을 얻어 한나라 요새인 환원을 공격했다. 

그 무렵 조나라의 사마앙이 이끄는 군사들이 관중을 쳐들어가기 위해 황하를 건너려고 하고 있었다. 유방은 급히 군사를 북쪽으로 움직여 평음을 공격하고 황하의 도선장을 파괴해 버렸다. 

그 뒤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낙양 동쪽에서 진나라군과 마주쳤는데 상황이 유리하지가 못했다. 그는 군사를 남쪽의 양성으로 옮긴 다음 군대를 재편성했다. 그런 뒤에 주나라 동쪽에서 남양의 군수 기가 이끌고 있는 진나라군과 싸워서 이를 무너뜨리고 남양군을 공격했다. 군수 기는 전세가 불리하자 도망하여 완에 머물렀다. 

패공 유방이 완의 공략을 미루고 서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서두르려고 하자 장량이 건의했다. 

“관중으로 들어가는 것을 서두르시는 뜻을 잘 알겠습니다만, 진나라는 아직도 대군을 거느리고 있으며 중요한 요새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완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서쪽으로 나아간다면 뒤가 불안해집니다. 반드시 앞뒤에서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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