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임강빈(1931 ~ 2016)

아침밥을 먹다가 입안에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조심조심하던 어금니가 빠져나갔다
밖으로 획 버릴까 하다가
멈추었다
팔십 평생
함께한 어금니
함부로 버릴 수야 없잖은가
보물 다루듯 씻고 또 씻었다
확 모양이다
빈자리가 허망하다
슬슬 한 둘 빠져 나가는구나
갑자기 슬픈 생각이 엄습한다.

 

[시평]

나이가 많이 들고, 그래서 신체가 노쇠해지면, 하나, 하나 우리 몸의 일부를 이루고 있던 것들이 망가지거나, 하나둘 신체를 빠져나간다. 평생 소중한 음식을 씹게 하여 우리의 몸이 이렇게 되도록 보존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이빨’도, 젊은 시절 돌이라도 씹을 수 있을 듯하던 단단하던 그 ‘이빨’도, 나이가 들어 하나 하나 힘없이 빠져 나가는 것,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모습이리라.

어느 날 노시인은 밥을 먹다가 간당간당 억지로 붙어 있던 어금니가 그만 빠지고 마는 허망함을 겪고 만다. 팔십 평생을 함께한 어금니. 그래서 보물 다루듯 씻고 또 씻고는 들여다보니, 그 절구의 확 모양으로 깊이 패어져 있는 어금니. 

신체의 일부였던 어금니가 이렇게 패어버렸으니, 마치 그 패어진 빈자리가 너무나 허망한 깊고 깊은 웅덩이와 같이 보여서, 그만 슬픈 생각이 밀려오는구나. 지난 생애가 마치 함몰하듯 패어져 있는 그 허망한. 나이가 들면 떠나는 것이 엄연한 자연의 이치이지만, 그 자연의 이치를 실감하는 것, 이 또한 슬픈 일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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