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정대구(1936~  )

창자도 자궁도 없는 것이 배불뚝이 만삭을 해가지고
거시기도 다리도 없는 것이 어딜 간다고
흰머리 하나 없는 흰머리에 중절모 비껴쓰고 대문 밖을 나서나
아무렴, 봄 아가씨 마중하려고

그렇게 어느 날 네가 감쪽같이 사라진 자리에
파릇파릇 뾰족뾰족 맑게 눈부시게 눈 뜨는 거
그거, 봄맞이 나간 너의 영혼 맞을 거야
눈사람, 나의 사람아

 

[시평]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다. 아직 11월 초인데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고, 마치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선 듯하다. 겨울이 오면, 눈이 내리고, 아이들은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든다. 눈을 굴려 뭉쳐서는 큰 눈덩이에 작은 눈덩이를 올려놓고는 숯으로 눈을 만들어 붙이고, 솔가지로 수염을 만들어 붙이고, 또 집안에서 뒹구는 중절모를 하나 머리에 비껴 씌운다. 마치 눈사람이 누구를 마중 나가는 듯이, 눈사람은 중절모를 비스듬이 쓰고는, 그렇게 대문 앞에 서 있다.

햇살이 따뜻해지고 눈은 녹아 눈사람도 녹아 사라진다. 아이들 하룻밤을 자고나니 그렇게 눈사람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 눈사람이 정말 봄 아가씨를 마중하러 멀리 마을 동구 밖에라도 나간 것일까. 그렇게 어느 날 감쪽같이 눈사람이 사라진 그 자리에, 아, 아 파릇파릇 뾰족뾰족 맑게 눈부시게 눈 뜨는 거. 아! 그런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마치 봄맞이 나간 그 눈사람의 감쪽같이 사라진 그 자리에, 사라진 눈사람의 그 희디흰, 그리고 맑디맑은 영혼과도 같은, 그런 새싹 파릇파릇 뾰족뾰족, 눈사람이 서 있던 그 자리에 돋아나고 있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