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그 실은 동쪽

박남수(1918 ~ 1994)

나의 전모를, 지금
내 스스로의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어둠 속에 묻혀
조금은 끄름까지 앉았을 나의 전모를.

싼타 모니카 해안에 앉아
멀리 서역을 바라보면서
동방의 나라, 나 박남수(朴南秀)는
여기서 서쪽, 그 실은 해 뜨는 동쪽
조국을 생각한다.

조국의 사람들을, 그 가슴에
물결치는 애련의 갈매기를, 그 부름을,
그 서러운 몸놀림을.
아 피맺힌 분단을.

 

[시평] 

박남수 시인은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다. 한국어로 시를 쓰는 분이 어쩌지 못하고 자손들을 따라서 언어가 다른 나라인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우리말과 글을 가장 잘 다루어야 할 시인에게는,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의 시인의 삶은 어떠했을까. ‘스스로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가 없는, 어둠 속에 묻혀, 조금은 끄름까지 앉았을, 그런 전모’를 지닌 삶 아니었을까.

미국의 서부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해변에 앉아, 저 넓고 넒은 바다를 건너면, 그 끄트머리 어딘가에 우리나라의 동해가 나오겠지, 하는 생각. 미국이라는 낮선 나라에 사는 한국인들이라면, 한번쯤은 했을 법한 생각이다. 너무나, 너무나 고국이 그립기 때문에. 

이곳에서 바라보면 그곳은 서쪽이지만, 저 서쪽의 바다를 건너가면 우리의 동해가 나오니, ‘여기서 서쪽, 그 실은 해 뜨는 동쪽의 조국’ 아니겠는가. 가슴에 물결치는 애련의 갈매기들이 부르는, 그 서러운 몸놀림의 피맺힌 분단의 조국을, 노시인은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해변에 앉아 오늘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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