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곡

함윤수(1916 ~ 1984)

 

꿈이 광야를 헤매는 이리떼처럼
날카로운 동공과 여윈 심장을 안고
언어 잃은 나라에서 눈물지는 밤

기인 시의(屍衣)를 펄럭이는 까마귀
음산한 침실에서 장송곡을 부른다.

 

[시평]

지금은 우리나라가 떳떳한 독립국이고, 또 세계의 선진국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실상을 참으로 가슴 절절이 느끼지는 못하겠지만. 일제라는 암흑기, 나라를 잃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나라만을 잃었는가. 아니다. 꿈도 무엇도 모두 모두 잃어버려, 마치 이리떼처럼 아픈 울음을 울부짖으며 날카로운 동공과 여윈 심장을 부여안고, 어둠의 광야를 헤매야만 했던 우리의 현실. 

시인은 이러한 당시의 현실을 사는 아픔을 장송곡을 부르는 까마귀에 비유를 한다. 주검의 긴 옷자락을 펄럭이며 음산한 침실에서 부르는 까마귀의 장송곡. 나라를 잃고, 또 우리의 말과 글까지 잃어버린, 그리하여 혀도 잘 돌아가지 않는 남의 나라 말을 써야 하는 슬픔. 이름까지 일본 이름으로 바꾸어야 하는 암담한 현실. 

나라를, 이름을, 언어를 모두 모두 잃어버린 시인은, 그래서 이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자와 같은 것이리라. 그리하여 내일을 향해 가고자 하는 꿈까지 잃어버린 참담함을 부여안고, 시인은 음산한 침실과 같은 현실 속에서 죽음의 노래, 장송곡을 부른다. 이제 우리는 모두 죽은 자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그러한 현실을 부여안고.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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