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당 추억

이향아(1938~ )

예배당은 언덕 위의 뾰족한 집이었다
종지기 아저씨는 다리를 절었다
그가 종을 칠 때면
마음이 이상하게 바빠지고
동네가 출렁거리고
그러기를 한 닷새는 계속하였다
무거운 문을 밀고 발끝으로 들어갈 때
훅하고 끼치던 이상한 향내
강도상 위 베고니아 꽃 같은 촛불을 보면서
나는 서둘러 주기도문을 더듬거렸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날마다 조금씩 착한 아이가 되고
‘저 들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이
멀리서 내게로 걸어오고 있었다.

[시평] 

이제 노년에 들기 시작하는 나이의 사람이라면, ‘예배당’에 관한 추억은 비단 기독교 신자들만은 아니리라. 6.25 전쟁이 끝나고 황폐해진 서울 도처에는 아담한 서양식 건물의 예배당들이 들어섰었다. 미국에 있는 교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는지, 교회 건물이 동네마다 들어섰다. 그러한 예배당엘 가면, 초콜릿도 주고 또는 옷가지도 주고 하여 우리는 그 재미로 예배당에를 가곤 했다.

그런 예배당은 언덕 위에 뾰족한 탑을 세우고 서 있었다. 크거나 장엄하지 않고 대부분 소박한 모습의 건물이었다. 그런 예배당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온 동네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그 종소리가 조금도 시끄럽거나 그렇지를 않았었다. 오히려 종소리는 잔잔히 퍼져가며, 동네를 조용히 술렁거려 놓았다.

그러나 오늘 이러한 풍경은 다만 하나의 추억이 될 뿐이구나. 대형 교회가 들어서고, 너무나 많아 종소리는 수면방해가 되어 민원의 대상이라, 더 이상 들을 수가 없게 됐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질수록 날마다 조금씩 착한 아이가 되고, 그래서 “저 들밖에 한밤중에 양 틈에 자던 목자들”이 멀리서 내게로 걸어오는, 그런 작은 예배당. 어쩌면 오늘 사람들, 그 예배당의 추억을 안고 모두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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