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통일I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정부는 내년부터 추진할 ‘국가전략프로젝트’의 대상과제를 선정하고 집중지원해서 글로벌 선도기술로 성장시키기로 했다. 대상과제에는 정보통신기술 분야에서 인공지능(AI), 에너지·환경 분야에서 탄소자원화, 바이오·의료분야에서 정밀의료기기, 기계·소재분야에서 자율주행자동차 등 4대 과제로 압축했다고 한다. 이 중 자율주행자동차는 자동차와 ICT 융합의 결정체로서 제4차 산업혁명의 핵심 중 하나이다. 전체 자동차 사고의 94%는 운전자 과실로 발생하기 때문에 무인자동차 시대가 시작되면 최소한 80% 정도의 자동차 사고가 없어지게 된다. 카셰어링의 활성화로 전체 자동차 숫자가 3분의 1로 감소해 교통과 환경도 좋아진다. 무인자동차의 주차시간도 짧아져 주차 공간이 축소돼 이 공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엄청난 혜택을 가져온다.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자율주행자동차 개발 경쟁이 뜨겁다. 과거에는 자동차 기술은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주도했지만 자율주행 자동차만큼은 자동차 제조업체는 물론 구글과 엔비디아 등 정보기술 업체도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무인자동차의 선두 주자는 미국이다. 구글의 무인자동차는 이미 도로에 시험주행 중이고 애플도 2019년에 무인자동차를 출시할 예정이다. GM은 향후 무인자동차의 큰 수요자가 될 라이드셰어링(Ridesharing) 회사인 리프트(Lyft)에 5억 달러를 투자하고 무인자동차 벤처기업 크루즈오토메이션(Cruise Automation)을 10억 달러에 인수했다. 미 연방정부도 무인자동차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40억 달러의 연구개발 보조금을 지원하고 무인자동차운행을 위한 관련 법규를 올해 내에 정비할 예정이다. 미국은 운전자가 탑승해야 하는 과도기 단계의 자율주행자동차를 건너뛰고 2020년에 운전자 없는 무인자동차 시대를 바로 열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도 2013년에 이미 도요타에게 도로주행 허가를 하고 시험을 시작했으며 중국정부도 20만 대의 차량에 전자 ID를 장착해 실시간으로 운행 상황을 파악하는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에 착수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와 ICT의 개별 경쟁력 면에서 현대·기아차가 세계 5위이고 삼성전자가 세계 1위로 결코 뒤지지 않으나 자율주행자동차는 선진국에 뒤떨어지고 있다. 기술개발에 늦게 뛰어든 데다 업체 간 협력 부족과 정부의 대책도 늦었기 때문이다.

최근 한·일과 독일, 프랑스, 영국, 유럽연합(EU) 등이 참가한 유엔 전문가회의를 발족시켜 올가을에 무인차 관련 국제표준에 기본 합의할 예정이다. 무인차 도입을 촉진시키고 독자적인 기준을 제정·발표할 예정인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서다. 참가국들은 전문가회의 합의 내용을 각국의 국내 기준으로 채택해 확산시킬 계획이다. 국제표준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은 기존 자동차 회사는 물론 구글이나 애플 등 정보기술(IT) 업체들까지 무인차 개발에 나서면서 무인차 개발 경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어 사고 가능성이 커지고 사고 책임 소재 불명확성에 따른 혼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테슬라 전기차 운전자가 자율주행 중 사망 사고를 일으킨 데다 일본 내에서도 자율주행차 사고가 잇달아 발생해 ‘사고 제로’라는 무인차의 신화가 깨지면서 무인차 신뢰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와 업계는 무인자동차 시대를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금을 대폭 확대하고, 버스전용차선을 활용한 무인자동차 시험운행을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자동차와 신호등 간의 통신 등 무인자동차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도 병행해야 한다. 법률적으로는 형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자동차관리법, 제조물책임법, 통신비밀보호법 등에 산재해 있는 규정들을 개정하거나 가칭 ‘무인자동차법’ 제정도 필요하다. 무인자동차라 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인공지능에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고 제조사와 운전자 간의 책임 소재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 무인자동차의 작동을 방해하기 위해 불량신호를 보내는 고의적 사고유발 행위를 처벌하고 무인자동차 탑승자의 대화를 수집하는 등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법률 규정의 정비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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