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맞아 23일 오후 병인박해 관련 성지 성당 3곳과 교구 주교좌 성당에서 기념 개막 미사를 봉헌했다. 주교좌 명동대성당과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관할하는 중림동 약현성당, 새남터 순교성지성당, 절두산 순교성지 등에서 진행된 미사에는 많은 이들이 참여해 순교의 넋을 기렸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미사를 앞두고 “150년 전 신앙인들에 비해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신앙은 오히려 허약해지고 있다”며 “이러한 때, 가장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신앙을 증거한 우리의 신앙 선조들을 기릴 수 있게 돼 영광스럽다”고 전했다. 

이번 미사는 지난해 12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함에 따라 ‘자비의 문’을 여는 예식이 개막 미사와 함께 거행됐으며, 폐막 미사는 오는 11월 13일 ‘자비의 문을 닫는 예식’과 함께 거행된다. 병인년 순교 150주년을 맞아 믿음의 뿌리를 재확인하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도 버렸던 믿음의 선조들처럼 믿음 또한 굳건히 지켜가자는 뜻이다. 

병인박해는 1866년 2월 23일 조선 4대 교구장 베르뇌 주교와 평신도 홍봉주가 체포되면서 시작된 한국 천주교 최대 박해다. 1866년부터 1871년까지 계속됐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천주교 박해로 8000명에서 1만명의 순교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나라 최대의 박해이며 가장 많은 순교자를 낸 병인박해. 이로 인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천주교는 1886년 한불조약 이후 회복하게 됐으며, 1968년에는 병인박해 기간 중에 순교한 24명이 복자(福者)로, 1984년에는 성인(聖人)으로 오르게 됐다. 

오로지 말씀과 믿음 안에서 신앙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그들을 보며, 한국 개신교의 모습을 생각해보게 된다.

일제강점기 천황신에게 경배하고 찬양했던 개신교 목회자들. 일제의 무력 앞에, 목숨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하나님이 주신 십계명 중 제일과 제이계명을 헌신짝처럼 버린 목회자들과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감옥에서 옥고를 치룬 이들 사이의 갈등과 싸움은 지금의 고신파가 갈라져 나온 계기가 됐다. 

여기에서 일본 신에게 절한 이들은 누구인가. 한국교회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단이 아닌가. 그리고 지금 이 장로교를 대표한다는 단체가 바로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다. 그렇다면 장로교의 뿌리는 무엇인가. 장로교의 뿌리는 살인자 칼빈의 교(敎)인 칼빈교다. 그리고 그 뿌리를 타고 내려온 장로교는 알다시피 일제강점기 천황 신에게 경배하고 찬양하던 이들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이들이 철저한 회개를 했던가. 형식적인 것에 그친 참회와 회개는 오래가지 못한다. 그 안에 진정성도 말씀도 믿음도 없기 때문이다. 죽을 것을 알면서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던 천주교 순교자들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다. 

오늘날 장로교가 주축이 된 한기총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기준이 아닌 자신들, 즉 사람이 만든 교리와 교법으로 이단, 삼단 운운하면서 정죄하기에 바쁘지 않았던가. 결국 자기들 내부에서조차 두 갈래, 세 갈래로 갈라졌으니 스스로가 말씀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요, 서로가 서로에게 이단이라 하니 스스로 말씀도 하나님도 함께하시지 않는 이단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씀만 없다면 그나마도 다행이건만, 말씀뿐 아니라 양심도 없다보니,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거룩한 척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오늘날 하나님과 예수님의 약속대로 이 땅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와 민족을 핍박하고 저주하는 일에 앞장서서 핏대를 세우고 있으니 참으로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성경 말씀에 기준한 신앙을 핍박하고, 사람이 만든 교리와 교법, 자신들의 소속 교단만이 진리인 것처럼 꾸미고 치장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이들을 핍박하니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 마귀의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씀은 곧 빛이니, 말씀이 없는 저들은 어둠이요, 야귀발동(夜鬼發動)이라 하였으니 빛이신 말씀이 없는 그들이 하는 행동은 마귀의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150년 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한 이들처럼, 목숨을 내놓고 신앙을 지킬 마음이 없다면 적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말씀이 없으면 양심이라도 그 안에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