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幻想) 교차로
이승은(1958~ )

지하철 입구에 쌓인 생활 정보지가
들이치는 소낙비를 온몸으로 막아서니
빗물에 눈 맞춤 하며 활자들이 젖고 있다
구직(求職)과 구인(求人) 사이 퉁퉁 불어 떠다니는
일용직 일자리가 얼룩지다 찢어지고
비긋는 바람벽으로 지친 등만 모여든다

[시평]

거리를 지나다 보면, 생활 정보지들이 꽂혀 있는 작은 가판대를 볼 수가 있다. ‘생활 정보지’,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여러 생활의 유용한 정보들이 담겨진 인쇄물이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이 인쇄물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내용은 구직(求職)과 구인(求人)에 관한 것들이다. 실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 그래서 일을 한다는 것만큼 요긴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구직과 구인난이 이 생활 정보지에 실린 것이리라.

오늘이라는 이 현실은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해 일곱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한다. 직장을 구하지 못했으니 돈이 없어, 연애도 결혼도 그래서 출산도 포기를 해야 하는 ‘삼포의 현실’. 그러니 변변한 인간관계도 이루지 못해 포기를 하고, 집 사는 것은 애초에 포기를 하는 ‘오포’, 마침내 미래에의 희망과 꿈까지도 포기를 했으니, 삶의 중요한 일곱 가지를 포기하는 ‘칠포 세대’라는 말이 나온 것 아닌가. 구직과 구인 사이 빗물에 젖어 퉁퉁 불은 활자들이 떠다니듯,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발이 불도록 돌아다니고, 일용직 일자리마저 없어 얼룩지다 찢어지는, 아무러한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의 지친 쓸쓸한 발걸음만이 비긋는 바람벽으로 모여드는 풍경. 오늘 우리 삶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아픔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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