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
이영춘(1942~ )

던킨도너츠 집에 앉아 도너츠 같은 사랑을 생각한다
 
층층으로 이어진 긴 유리창에
우울 같은 가을비 내리고
젊은 입술들의 꽃잎 같은 언어들이
유리창에 길게 누워 흐른다
 
던킨도너츠 입술 위에 그림자 같은 얼굴 하나 겹친다
축축한 반죽으로 발효시켰던 회(灰)가루 같은 사랑,
내 사랑도 거기 둥둥 떠 긴 창을 타고 흐른다
 
둥근 던킨도너츠처럼 환하게 부풀었다가
허리 뒤틀린 꽈배기처럼 떠난 그림자, 그 그림자
 
하루 종일 유리창엔 비가 내리고
꽃잎 언어들은 지칠 줄 모른 채
도너츠 같이 둥근 사랑을 구워내고 있다.

[시평]
비가 오는 어느 날. 던킨도너츠 집에 앉아, 아무러한 생각 없이 유리창으로 떨어져 흐르는 빗물을 바라본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보다가, 너무도 까마득한 먼 시절의 사랑, 문득 떠오른다. 유리창으로 흐르는 그 빗물 같이 우울했던 사랑의 어느 그 순간.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빗물이 흐르는 유리창으론 그림자 같은 얼굴 하나 겹쳐지고. 축축한 반죽으로 발효시켰던 횟가루 같은 사랑, 그 사랑이 떠오르고. 아, 아 던킨도너츠마냥 환하게 부풀었던 사랑의 그 순간. 그리고는 이내 떠오르는 허리 뒤틀린 꽈배기마냥, 서로 이리 꼬이고 저리 꼬이다가는 그만 떠나간 사랑의 그 그림자.

젊은 입술들 하루 종일 꽃잎 같은 언어를 지칠 줄 모르게 쏟아내는 던킨도너츠 집. 그 환한 사랑 가운데 앉아, 이제는 먼 기억이나 문득 더듬는, 유리창으로 줄줄이 흘러내리는 빗물 같은, 내 먼 사랑의 기억들. 지칠 줄 모르는 젊은 그 환한 꽃잎 같은 그 언어들, 아, 아 오버랩 되는 어느 날 오후.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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