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안경원(1950~ )

꾹꾹 눌러 짜면 잘 나오던 치약이 간신히 나온다. 가위로 잘라 속에 남은 것을 싹싹 훑어 쓰면서 이렇게라도 속을 보여 줘 고맙다고 한다.
튜브 끝을 쥐어짜면서 어디쯤 있냐고 얼마쯤 남았냐고 끝내 무자비하게 자르는 내 손길을 치약은 야만적이라고 하겠지만
얘야!
너도 그 꼴 당하기 전에 어디 한번 뒤집어봐라.

[시평]

치약을 쓰다보면, 끝에 남아 있는 마지막 치약까지 쓰기 위하여 튜브를 비틀듯이 짜고 또 짜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실은 가위로 치약 튜브를 잘라서 쓰면, 그 속에 남아 있는 치약,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쉽게 쓸 수가 있는데, 어연 일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위로 튜브를 자르는 대신에 튜브를 힘들여 짜고 또 짠다.
가위로 싹둑 자르는 것이 왠지 무자비하다고 생각이 돼서 그런 것인가. 왠지 야박하다고 생각이 돼서 그런가. 그래서 자르는 것을 유보한 채 짜기만 하는 것인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쥐어짜기만 하면서, 속을 뒤집어 보여주지 않는 모습 또한 있다. 쥐어짜는 쪽이나 짜임을 당하는 쪽이나 서로 고통을 당하는 것은 일반이다. 그러니 차라리 가위로 싹둑 잘라 그 속을 다 뒤집어 놓고는, 그와의 관계를 잘라버리면 좋을 것을, 그러지 못하고 힘들게 짜고 짜는 것, 바로 우리네 사는 모습 아니겠는가.
그래, 그래서 하는 말씀. “얘야! 너도 그 꼴 당하기 전에 어디 한번 뒤집어봐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