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부인 고(故) 손명순 여사의 발인식이 11일 오전 거행된다. 지난 7일 95세로 세상을 떠난 손 여사는 국립서울현충원 김 전 대통령 묘역에 합장될 예정이다.

손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장례 기간 내내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전현직 정치인들이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해 정계에 입문한 이 전 대통령은 “YS 대통령 시절부터 (손 여사와) 인연이 있었다”며 “하늘나라에 가셔서 편안하고 건강하게 사시라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손 여사는 ‘3김(金) 시대’를 열었던 세 거물,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부부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손 여사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당시 서울대 3학년이던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이화여대 약대 재학생이던 손 여사는 결혼 사실을 학교에 끝까지 숨기고 다녀 졸업했다. 당시 이화여대는 금혼 학칙이 있어서 재학 중에 결혼하면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결혼 이후 남편이 ‘40대 기수’로 성장하며 군사정권의 탄압을 받았을 때도, 민주화 투쟁과 3당 합당을 거쳐 첫 ‘문민 대통령’으로 정점에 올랐을 때도, 그리고 ‘IMF 책임론’ 속에 내리막을 걸었을 때도 그의 곁을 가장 가까이서 지켰다.

YS가 1983년 5월 신군부에 항의해 가택연금 상태서 벌인 단식 투쟁을 벌일 때는 외신 기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손 여사는 YS의 대통령 당선 후 가진 인터뷰에서 “(단식 당시)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절박감에 만류하기도 했다. 저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만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40년간 상도동을 찾은 사람들에게 이참 시래깃국을 대접하는 것을 결코 빠뜨리지 않았다. YS가 ‘대도무문(大道無門)’을 표방하며 ‘정치 9단’의 경지에 오른 문민정부 시절에도 장소만 상도동에서 청와대로 옮겼을 뿐, 손 여사의 역할은 한결 같았다. 청와대 식단도 칼국수 등 서민 음식으로 바꿨다. 경내에 직접 야생화와 쑥, 머위, 돌나물을 재배했다.

하지만 인사와 국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영부인의 대외 활동이 드러나는 것을 몹시 꺼렸다. ‘무홍보’ 지침에 그에 대한 동정 보도는 거의 없었다. 해외 언론은 손 여사에 대해 ‘내조 9단’이라고 했다.

정치권은 손 여사를 ‘YS를 있게 한 진정한 동반자이자 현모양처’라고 평가한다. 우리나라 민주화를 토대를 이룬 ‘3김 시대’에 YS를 조용히 내조한 손 여사의 영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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