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

영화 ‘검은 사제들’ ‘사바하’ 등을 통해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장재현 감독이 이번에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영화 ‘파묘’를 공개했다. ‘파묘’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전작인 ‘검은 사제들’보다 파면 팔수록 뭔가가 더 나오는 흥미로운 전개가 이어지고, ‘사바하’보다 대중적인 색채로 무장돼 있다. ‘파묘’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다루고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도입된 샤머니즘과 엑소시즘의 조화, 한국 특유의 장례 문화를 중심 소재로 사용하고 토속신앙·민속신앙에 100여년 전 역사까지 투입했다.

극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안정된 플롯에 인간과 영혼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의 강렬하고 독창적인 캐릭터 구축도 빽빽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한몫한다.

영화는 미드포인트까지 미스터리한 오컬트 분위기를 보여주면서 긴장감을 배가시키고 클라이맥스로 갈수록 일본 괴수를 연상케 하는 적대자를 투입시키며 오컬트물을 다소 벗어난 모험에 도전한다. 관객들은 파묘와 연관된 한 가족의 불운한 가정사에 주목했지만 장 감독이 활용한 맥거핀을 겪으며 후반부에서는 한반도의 역사와 연결된 미스터리에 직면한다. 또 과거 일제가 한반도의 정기를 막기 위해 국내 곳곳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러한 소재들이 후반부 서사의 중심이 되고 요괴가 등장해 오컬트 장르의 관습도 파괴한다.

속임수, 미끼라는 뜻의 맥거핀은 히치콕 감독이 고안한 극적 장치를 뜻하며, 극의 초반부에 중요한 것처럼 등장했다가 사라져 버리는 일종의 ‘헛다리 짚기’ 장치를 말한다. 관객들의 기대 심리를 배반하거나 노리는 효과는 바로 ‘파묘’ 시작부터 끝까지 유지되는 팽팽한 긴장감이다. 장 감독은 영화의 미드포인트를 지나 클라이맥스에 가서도 확실한 작가의 중심적 해답을 내놓지 않고 관객의 주의를 끌다가 놓아버리는 조절을 통해 몰입과 이완의 효과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장면은 바로 김고은의 대살굿이다. 가련한 몸으로 묘 앞에서 울부짖으며 칼춤을 추는 열연은 선배 배우들도 감탄했고, 무당보다 더 무당 같다는 박수를 받았다. 특히 중얼거리며 긴 경문을 외우며 음을 타는 격한 모습은 소름까지 끼친다.

영화 ‘파묘’는 조상묘를 잘 쓰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믿음, 조상묘에 물이 차면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 땅의 기운을 끊으면 나라가 힘을 잃는다는 믿음 등을 기반으로 모든 인간이 지닌 공포, 슬픔, 안타까움 등의 감정을 담아내면서 ‘미신은 존재하는가’ ‘과학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영적인 세계는 존재하는가’ 등 기묘하면서도 흥미로운 스토리에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잘못된 조상의 묫자리로 인해 화를 입은 집안의 이야기로 시작해 가슴 아픈 역사로 급회전한 스토리는 일부 관객들의 고개를 꺄우뚱하게 만든다. 미스터리·호러 매니아들에게는 복선 깔기가 아닌 새로운 실험적 시도와 플롯이 더 강하게 필요할지 모른다. 영화가 기억의 잔상들로 오랫동안 남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되고, 새로운 창작적 실험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한 상황이 증명하듯, 관객들은 수상한 묘를 이장한 풍수사와 장의사, 무속인들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에 심취하며 꼼꼼한 묘사, 신선함에 표를 던지고 있다.

‘파묘’는 기존 엑소시즘, 공포영화에서 볼 수 있는 관절이 꺾이고 침대가 날아가는 판타지보다 관객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리얼리티에 바탕을 두며 노력했다는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공포와 초자연적인 현상에 한국적 리얼리티를 가미해 오컬트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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