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동아예술전문학교 예술학부 교수)

군복을 입은 스페인의 한 10대 여성이 군사 훈련을 받고 있다. 바로 스페인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레오노르 공주다. 스페인 공주는 3년간 11명의 다른 여군들과 함께 공동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갖춘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스페인 정부는 왕족인 공주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의 입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해 온 사우디아라비아도 여성의 군입대를 허용하고 있다. 사우디는 여성이 직업군인으로 입대하고 부사관급까지 진급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여성들의 군 생활을 개방 중이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한 정당이 ‘여성 군입대 검토’를 향후 추진할 대표 정책으로 내놓았다. 금태섭 전 의원과 류호정 의원은 ‘병역 성평등’을 주장하며 여자는 집에서 가족을 돌보고, 남자는 군대에서 나라를 지키는 식의 전통적 성 역할을 이제 부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성의 병역의무를 여성도 평등하게 이행하게 하자는 ‘병역 남녀평등’ 첫 제안이라 신선하고 시원하게 들린다. 여전히 사회에서는 “여자가 왜 군대를 가야 하나”는 의견이 대다수이지만, 70여년간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이제는 여성도 최소한 총과 수류탄 등 기본적으로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힘을 싣고 있다.

여성의 군입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일정 기간의 ‘의무적 사회공익 서비스’도 도입할 수 있다.

이미 십수년 전 국회안보포럼에서 ‘여성 의무 복무’ 주장이 제기됐다. 만 18세 이상 여성이 1년가량 병역 의무를 지는 것을 논의하기도 했지만 말뿐이었다. 과거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여성 군 의무 복무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번 올라왔지만, 정부에서는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사실 군 제대를 한 남성들은 자신이 복무한 18개월 동안 시간을 강제로 쏟아부었지만, 사회는 그 노력만큼의 대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추후 인구감소로 인한 남성 수 부족, 북한의 지속되는 위협, 여자도 군대를 징병제로 복무하는 몇몇 국가들의 예는 이제 한국에서도 여성의 ‘국방 의무 역할론’을 검토할 때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도 최근 양성평등을 이유로 여성징병제를 도입했다. 징집 국가인 이스라엘은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하지만, 남녀의 복무 기간은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북한 여성도 7년간 의무 복무를 하고 있다.

여성들이 사회적 성평등을 주장하고 권리를 얻으려면, 여성들이 먼저 그에 준하는 의무 복무 서비스에 동참해야 한다. 여성 군복무를 의무화한 노르웨이에서 여성들이 나서서 여성 징병제를 추진했는데, 그 배경에는 성평등이 숨어 있다.

남성만 의무적으로 참여한 징병제는 우리 사회 남녀 차별의 근간이 되는 제도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여성도 군대를 가야 된다’는 아젠다보다는 여성의 의무 사회 복무제를 제도화시켜 국가가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고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일한 수준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제기된 여성 군입대 이슈가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신당에 대한 관심을 끌려고 나온 목적이 아니길 바란다. 단순한 젠더 이슈몰이가 아닌 이제는 성별 역할 분담을 같이하고 초저출산의 시대에 병역의 의무를 같이 분담해야 부족한 병역 자원을 메울 수 있다. 한쪽 성만 이어져 온 징병제는 이제 수정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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