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지표들 줄줄이 무너져
건설수주, 환란 후 최대 하락
소비 위축에 설비투자 감소도

‘L자 장기 저성장’ 본격화 우려
올 경제 성장도 ‘안갯속’ 전망
“내수 활성화 정책 노력 시급”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들의 대출(사업자대출+가계대출) 규모가 1천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또 이들 10명 가운데 6명은 3개(기관·상품) 이상의 대출로 자금을 끌어 써 금리 인상기에 가장 위험한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3일 서울의 한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모습. 2023.4.3 (출처: 연합뉴스)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들의 대출(사업자대출+가계대출) 규모가 1천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또 이들 10명 가운데 6명은 3개(기관·상품) 이상의 대출로 자금을 끌어 써 금리 인상기에 가장 위험한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3일 서울의 한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모습. 2023.4.3 (연합뉴스)
[핵심요약]

◆얼어붙은 내수에 체감 경기 ‘뚝’

고금리, 고물가, 부동산 시장 침체와 맞물려 소비 위축과 설비투자 감소 등 내수 부진이 이어지며 체감 경기가 ‘얼음장’ 같이 얼어붙고 있다. 올해 들어 1월 수출은 20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한 반면, 내수는 2년 연속 감소하며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무엇보다 체감 경기와 직결된 부동산 시장 침체는 건설 투자 감소와 가계 자산 감소로 이어져 내수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울한 경제 성장 전망

수출 반등에도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서 올해마저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는 ‘L자형 장기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상향되고 있는 세계 경제와 달리 한국 경제 성장 전망치는 낮아지고 있다. 한국은행도 최근 올해 경제 성장률을 2.1%로 전망하면서 (IT를 제외한) 내수 기준 성장률은 1.7%로 보고 있다고 했다. IT 수출을 빼면 올해도 성장률이 1%대에 그친다는 의미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악착같이 버티고는 있는데 IMF 때만큼 힘듭니다.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중소기업보다 소상공인으로 갈수록 더 그렇습니다.”

과거 코로나19 사태나 금융위기의 험난한 파고를 이겨냈던 자동차 업계 한 중소기업 사장이 지금은 상황이 그때보다 더 안 좋다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최근 수출이 개선되고 ‘상저하고’의 희망적인 경제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과는 달리, 소비 위축과 설비투자 감소 등 내수 부진이 이어지며 체감 경기는 ‘얼음장’ 같이 얼어붙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 부동산 시장 침체 등도 맞물린 상태다. 실제 기자가 만나본 현장의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은 낙관적인 경기 지표·전망과 체감되는 경기 간의 큰 온도 차에 괴리감을 호소했다.

한 치킨점 자영업자도 “장사가 갈수록 안돼 가게를 내놓은 지 오래”라면서 “가게를 내놔도 당최 나가지를 않는다. 전기세와 월세가 각각 수십만원이 나가는데 보증금 깎여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또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불안한 경기 지표 동향

지금 경기가 IMF 때만큼 힘들다는 호소를 낳는 배경은 무엇일까. 올해 들어 1월 수출은 20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며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인 반면, 내수는 2년 연속 감소하며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가 지표상 경기회복 흐름을 언급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경제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행을 앞두고 마지막 주말인 10일 오후 폐업한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음식점에 전기사용계약 해지 예정 알림 고지서가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21.7.10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시행을 앞두고 마지막 주말인 10일 오후 폐업한 서울 중구 명동 거리의 음식점에 전기사용계약 해지 예정 알림 고지서가 붙어 있다. ⓒ천지일보 2021.7.10

실제 현재의 경기 상태를 말해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장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달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기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6(2020년=100)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달보다도 0.3p 낮은 데다 하락 폭도 직전 달의 –0.1p보다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6월 100.1로 하락 전환한 이후 7개월째 내림막인데,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4월∼2009년 2월 11개월 연속 떨어진 이래 최장 하락세라는 점이 우려를 더한다.

동행지수뿐 아니라 내수 상황을 나타내는 음식점 포함 소매판매액 지수도 2022년에 0.3%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4%로 감소 폭이 확대됐다. 2년 연속 감소는 1995년 관련 통계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인 데다 2003년에 3.2% 감소한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큰 감소 폭이다.

특히 단기 소비재인 비내구재의 소비가 전년 대비 1.8% 떨어졌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8.8%) 이후로 최대 감소율이다. 통계를 시작한 이래 최대 감소를 기록한 음식료품(-2.6%)과 의약품(-1.5%)의 영향이 컸다. 높은 물가와 금리로 인해 가계의 소비 능력이 감소하면서 국민들이 필수품과 일용 소비재 소비에 지갑을 닫은 데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내수 부진은 다른 주요국들과 비교해봐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지난해 3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0.2%로 주요 7개국(G7) 평균 1.2%, OECD 평균 1.5%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 1.9%를 예상했지만, 고금리 지속 등으로 회복세는 더뎌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민간소비 증가율은 전년과 유사한 1.8%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그래픽=이태교 기자] 주요 기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왼쪽)과 13대 주력산업의 산업전망 기상도. (자료: 주요 기관, 산업연구원) ⓒ천지일보 2024.01.01.
[그래픽=이태교 기자] 주요 기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왼쪽)과 13대 주력산업의 산업전망 기상도. (자료: 주요 기관, 산업연구원) ⓒ천지일보 2024.01.01.

생산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제조업 생산은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분야에서 3분기 연속으로 생산이 감소하면서 코로나19 엔데믹 이후에도 경기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서비스 소비의 간접적 지표인 서비스업 생산도 성장이 느려지고 있다. 지난해 서비스업 생산이 2.9% 증가했지만, 2021년 5.0%, 2022년 6.7%에 비해 최근 3년 중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이와 관련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높은 물가와 이자율이 누적돼 올해 상반기까지는 생활 회복을 체감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 데 이어 이달 초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지표상 경기회복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부문별 온도 차가 커서 아직 체감할 수 있는 회복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부동산 시장 침체도 한몫

무엇보다 체감 경기와 직결된 부동산 시장 침체는 건설 투자 감소와 가계 자산 감소로 이어져 내수 부진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에서 건설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22년 기준 약 15%에 이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성 위기까지 불거지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하는 모습이다.

실제 건설 수주액은 지난해 1~11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4% 감소하며 외환위기(1998년, -42.1%) 이후 최대 폭으로 뚝 떨어졌다. 착공 또한 급격히 감소하며 건설 경기는 심각한 부진을 맞고 있다.

지난해 1분기 건축 착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7% 떨어진 데 이어 2분기 -46.5%, 3분기 –44.2%로 더 추락했다. 건설 투자가 우리나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라고는 하지만 제조업과 서비스 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비수도권일수록 건설 투자 비중은 커진다. 고용 역시 일용직 근로자 가운데 건설업 종사자가 약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건설 분야가 체감 경기와 직결돼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동행지수를 구성하는 지표 가운데 수입액, 광공업생산지수는 증가했으나 건설기성액과 내수출하지수는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건설기성은 건축 공사 실적이 줄면서 전월 대비 2.7% 감소했다. 국내로 물건이 팔려나가는 수준을 보여주는 내수 출하는 전월보다 1.3% 줄었다. 수출 출하가 반도체 호조 등에 힘입어 8.4% 늘어난 것과 대비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천지일보 2022.5.9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천지일보 2022.5.9

◆엇갈리는 동행·선행지표

다만 수치상으론 앞으로의 경기 상황을 가늠할 지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6개월 후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12월 전월보다 0.1p 올라 100.0(2020년=100)을 기록했다. 구성 지표 가운데 장단기금리 차, 경제 심리지수 등이 감소했으나 재고 순환지표와 건설수주액 등이 증가했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9월부터 4개월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동행지수·선행지수 두 지표만 놓고 보면 현재의 경기는 수축한 상태지만 향후 좋아질 것으로 기대된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다만 동행지수 하락 폭이 직전 달보다 커졌다는 점에서 경기 회복세는 더딜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규철 경제전망실장은 “경제의 모든 부문이 다 같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면 두 지표의 차이가 크게 없을 텐데 현재는 제조업과 수출은 좋아지고 내수는 부진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수출 반등에도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서 올해마저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할 경우 우리 경제는 ‘L자형 장기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도 터져 나온다.

◆“경제 성장률 더 추락할수도”

실제 상향되고 있는 세계 경제와 달리 한국 경제 성장 전망치는 낮아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달 들어 발표한 중간 경제전망에서 ‘내수 부진’ 등을 이유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2.2%로 낮춰잡았다. 이는 지난해 11월 예상치(2.3%)보다 0.1%p 낮아진 수치다. 2%대 성장률은 코로나19 펜데믹 기간을 포함해 ‘성장 쇼크(충격)’인 지난해를 제외하고 2020년 이후 최저치다. 이와는 반대로 주요 20개국(G20)의 올해 성장률은 기존 2.7%에서 2.9%로 0.2%p 상향 조정됐다.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낮춘 이유로는 국내외 경제 불확실성 증가가 꼽혔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금리 인상, 중국 경제 성장 둔화,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한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됐다. 내수에선 소비 위축과 투자 감소가 성장률 회복을 저해하고 있다는 게 OECD 설명이다.

한국은행도 최근 올해 경제 성장률을 2.1%로 전망하면서 “정보기술(IT) 수출이 많이 회복했기 때문”이라며 “(IT를 제외한) 내수 기준 성장률은 1.7%로 보고 있다”고 했다. IT 수출을 빼면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성장률이 1%대에 그친다는 의미다.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국제통화기금 IMF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3.1%로 높여 잡았다. 지난해 10월 내놓은 것보다 우리나라와 세계 경제 성장률 모두 올렸다. 사진은 27일 오후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1.1.27
[천지일보=신창원 기자] 국제통화기금 IMF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9%에서 3.1%로 높여 잡았다. 지난해 10월 내놓은 것보다 우리나라와 세계 경제 성장률 모두 올렸다. 사진은 27일 오후 인천신항 컨테이너 터미널에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21.1.27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올해 2%대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내수 부진 극복, 수출 확대, 투자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잠재성장률이 향후 1%대,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성장률을 올리려면 경제주체들이 저출산·고령화, 생산성 하락, 중국·인도 등과의 경쟁,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기후변화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는 “올해는 부문별 회복세 차별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경기회복 체감도 개선 지연에 따르는 불확실성 등도 존재한다”면서 “외수 환경 개선과 함께 견실한 내수 기반 조성이 필요한 만큼 적극적인 정책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정책 기조 변화 등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내수 시장 전반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대문 시장 인근 거리에 폐업한 식당 입구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대문 시장 인근 거리에 폐업한 식당 입구에 임대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