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갚은 대출 1년 새 50%↑
자영업 다중채무 연체액 급증
체감경기, 2년 만에 가장 낮아
올해 경영 악화 전망도 75%
정부 ‘금융지원 패키지’ 발표
‘빚에 빚 더한다’ 지적 나와

3일 서울의 한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모습. 2023.4.3 (출처: 연합뉴스)
3일 서울의 한 시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들 모습. 2023.4.3 (출처: 연합뉴스)

핵심요약

◆빚더미 오른 자영업자들

한껏 높아진 금리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빚의 굴레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335만 8499명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액은 1년 새 50% 가까이 급증했고, 평균 연체율도 약 0.8%p 상승했다. 이 중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체액은 7조 5005억원, 평균 연체율은 1.03%p 높아졌다.

◆정부 ‘대출 지원’에만 급급

문제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 정책이 ‘빚으로 버티기’로 일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전부터 꾸준하게 대출 위주의 자영업자·소상공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경기 부진으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더 늘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대출 지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채무 재조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한껏 높아진 금리가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빚의 굴레에 허덕이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지속된 경기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여러 금융기관에서 돈을 최대한 빌려 추가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다중채무 자영업자’도 급증했다.

정부가 저리 대출과 같은 ‘빚으로 버티기’ 기조를 이어가는 만큼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정부가 ‘빚에 빚을 더하는’ 정책보다 ‘빚을 덜어줄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다. 대출 중심 관행에서 벗어나 채무 재조정 등 빚의 규모를 줄여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자영업자 대출 1110조 달해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의 ‘개인사업자 가계·기업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335만 8499명의 개인사업자(자영업자)의 대출잔액은 총 1109조 6658억원에 달했다.

1년 전인 2022년 말(327만 3648명, 1082조 6258억원)과 비교해 대출자는 8만 4851명(2.6%), 대출잔액은 27조 400억원(2.5%) 더 늘었다.

같은 기간 이들의 연체액(3개월 이상 연체 기준)은 18조 2941억원에서 27조 3833억원으로 9조 892억원(49.7%) 급증했고, 평균 연체율도 1.69%에서 2.47%로 약 0.8%p 상승했다.

연체액은 원금 또는 이자를 90일 이상 갚지 못한 자영업 채무자의 대출액 전체로 정의했다. 연체율은 이렇게 추산된 연체액이 전체 자영업 채무자의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3개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작년 12월 말 기준 자영업자 중 다중채무자는 173만 1283명(51.5%)으로, 전체 개인사업 대출자 가운데 절반 이상(51.5%)을 차지했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691조 6232억원에 달했다.

다중채무 인원과 대출 규모를 1년 전(168만 1164명, 675조 3047억원)과 비교했을 때 각각 5만 119명(3.0%), 16조 3185억원(2.4%) 증가했다.

다중채무 자영업자들의 연체액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체액(21조 7955억원)은 2022년 말(14조 2950억원)보다 7조 5005억원(52.5%) 증가했고, 평균 연체율도 2.12%에서 3.15%로 1.03%p 높아졌다.

이 중 20·30대 젊은 자영업자들의 처지가 가장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영업 규모나 자산 등의 측면에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20·30세대 젊은 자영업자들이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다중채무 자영업자의 연체액 증가율을 연령별로 봤을 때 30대(30∼39세)가 62.5%(1조 7039억원→2조 7691억원)로 가장 높았다. 이어 ▲60세 이상 58.0%(2조 8989억원→4조 5800억원) ▲50∼59세 56.0%(4조 4550억원→6조 9491억원) ▲40∼49세 43.7%(4조 8811억원→7조 127억원) ▲29세 이하 36.1%(3561억원→4846억원) 순이었다.

연체율은 29세 이하(6.59%)에서 최고였고, 30대가 3.90%로 두 번째였다. 40대(3.61%), 50대(2.95%), 60세 이상(2.51%)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연체율은 낮아졌다. 1년 사이 연체율 상승 폭도 29세 이하(2.22%p)와 30대(1.63%p)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빚도 빚인데 체감경기도 바닥

자영업자들의 빚이 갈수록 불어나는 가운데 이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최악에 치닫고 있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지난 1월 18~22일 소상공인 2400개와 전통시장 13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1월 소상공인 경기체감지수(BSI)는 48.1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대비 10.9p 하락한 것으로 2022년 2월(37.5) 이후 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통상적으로 체감 BSI 수치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호전됐다고 보는 업체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 명절을 앞두고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업체들이 실제로 느끼는 경기는 그만큼 나빴다는 이야기다.

조사 부문별로 판매실적(매출)은 48.0으로 전월 대비 12.4p 하락했고 구매 고객 수는 49.9로 11.9p 내려갔다. 자금 사정은 51.5로 12.9p 떨어졌다.

경기가 둔화되면서 소비가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올해 경영 전망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도 늘었다. 소상공인연합회 ‘2024 소상공인 경영 전망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상공인 74.8%는 올해 경영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개선될 것이라는 응답은 8.0%,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답변은 17.2%에 그쳤다.

올해 경영 악화를 예상하는 가장 큰 이유(복수 응답)로는 경기 악화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71.2%)이 가장 많이 꼽혔고 이어 부채 증가 및 금리 인상에 따른 금융비용 상승(56.8%), 고물가에 따른 원가 상승(55.8%) 등 순이었다.

경기 위축과 소비 둔화에 따른 매출 감소와 수익 저하에 더해 고금리라는 ‘트리플’ 악재 상황이 겹치면서 추가 대출로 연결되고 있는 셈이다.

◆‘빚으로 버티기’보단 ‘줄여주기’ 중요

문제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정부 정책이 ‘빚으로 버티기’로 일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최근 금융권과 함께 소상공인과 서민 등 취약 금융 계층을 대상으로 한 ‘금융지원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에는 ▲은행권 민생금융 ▲소상공인 대환대출 ▲제2금융권 이자 환급 등이 담겼다.

정부는 이전에도 중소기업ㆍ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진행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첫 조치가 시행된 뒤 다섯 번 연장했다. 대출 원리금 상환유예는 지난해 9월 종료됐지만, 만기 연장은 최대 내년 9월까지다.

이에 대해 전문가는 경기 부진으로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더 늘 수 있는 만큼, 정부가 대출 지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채무 재조정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영업자는 코로나19 당시 위축됐던 것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금융기관과 자영업자 간 자율적인 채무 재조정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부채를 덜어주는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그냥 가만히 놔두면 잘못하면 신용불량자 또는 파산자가 양산될 수 있다”며 “현 정부가 새출발기금을 통한 원금 탕감 등을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아는데 규모나 적용 범위를 넓혀 적극적인 채무 재조정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또 “(정부가 발표한 민생·상생금융 패키지는) 빚을 추가로 얻도록 하는 정책”이라며 “현재 필요한 정책은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의 빚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것은 돌아오는 원리금 납부 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망하기 때문인데, 이를 줄여주는 것이 ‘새 빚을 또 내라, 내가 쉽게 해줄게’ 이런 정책보단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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