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펴낸 동화책으로

발달장애 아이들 학습서 활용

평생교육원 건립 위해 구슬땀

강남구 평생교육원 증축 기여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남희 생활과학지식센터 이사장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남희 생활과학지식센터 이사장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31.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발달장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퇴보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정상인의 성장을 따라갈 수 있도록 교육적 뒷받침을 해야 합니다.”

정남희(54) 생활과학지식센터 이사장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외국의 한 사례를 봤는데 발달장애인을 정책적으로 잘 키워 한 분야에 전문인으로 키워낸 사례가 많고, 대학교수들도 많다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기억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이사장은 “저희 센터 앞 타이틀을 보면 ‘자기결정 역량강화 교육기관’이라고 돼 있다. 스스로 판단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은 것이 제 꿈”이라며 “그래서 발달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육성하며 세미나를 열어 학부모에게 성공사례를 알리는 일을 하는 게 정관에 있다”고 설명했다.

◆자폐성 발달장애 2급 아들 위해 헌신

정 이사장의 아들 박준성(27)씨는 자폐성 발달장애 2급이다. 정 이사장은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믿을 수 없다고 병원 3곳을 옮겨 다니며 검사를 받았는데 진단은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무엇보다 준성씨를 정상인로 키우기 위해 집을 담보로 은행에 넣고 수없이 많은 곳에서 아이를 치료했다. 준성씨의 치료를 위해 못 할 게 없었다. 하지만 정 이사장의 남편은 IMF 이후 일자리가 불안정했고,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졌으며, 집은 거의 도산 위기까지 갈 정도로 피폐해졌다. 게다가 정신과 쪽 치료비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큰 부담이었다.

정 이사장은 준성씨를 키우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하루 24시간을 같이 있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 나의 시간은 아예 주어지지 않았다”며 “아이가 6~7살 정도 됐을 때 활동 보조 서비스라는 게 생겼었는데 그것도 장애등급 1급만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머나먼 얘기였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일을 해야 했지만 준성씨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게 정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책 배달하는 일을 했는데, 잠깐 사이에 아이가 차 문을 열고 사라지는 바람에 하루 일을 다 망치고 그랬다”며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차에다 아이를 묶고 다녔다”고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남희 생활과학지식센터 이사장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들 박준성(27)씨와 함께 만든 동화책 ‘세상과 이야기하고픈 앵무새’를 들어보이고 있다.ⓒ천지일보 2024.01.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남희 생활과학지식센터 이사장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아들 박준성(27)씨와 함께 만든 동화책 ‘세상과 이야기하고픈 앵무새’를 들어보이고 있다.ⓒ천지일보 2024.01.31.

◆아들과 발달장애인 위한 동화책 출간

준성씨가 걸음이 자유로워지면서 수시로 집을 나가서 그를 찾는 게 정 이사장의 일상이었다. 그는 “잠깐의 눈을 못 뗐다. 문을 열고 집을 무작정 나가서 매일 같이 아이를 찾아다니는 게 일이었다”며 “5년 동안 3일이 멀다 하고 집을 나갔다. 당시 경찰서에는 우리 아이의 이름이 1순위로 올라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준성씨가 자꾸 집을 나가려고 하기에 그를 끌어 앉혀 놓고 시작한 게 ‘그림그리기’였다. 정 이사장은 “집도 그리고 사과도 그리고 그림책에 있는 걸 따라 그리기도 하고 하면서 칭찬을 많이 해줬다”며 “그랬더니 언젠가부터 그림에 흥미를 보이고 그림 표현을 잘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준성씨는 본인이 집을 나갈 때 본 것을 그림으로 나타냈고, 매일 도시 하나를 만들어 냈다.

준성씨에게 그림의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 이사장은 ‘세상과 이야기하고픈 앵무새’라는 동화책을 펴냈다. 글은 정 이사장이 썼고, 그림은 동화책 속의 주인공인 아들 준성씨가 그렸다. 동화책은 준성씨가 그린 그림을 정 이사장이 해설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정 이사장은 “지금 보고 있는 이 동화책은 우리 아이를 잃어버리고 다 찾은 곳”이라며 “그것을 다 글로 표현하기 엄청나서 그림으로 해설하는 것이 재미있겠다 싶었다. 이 책을 발달장애 아이들의 학습서 같이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 대표와 방과후학교 교과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정 이사장은 2015년부터 (사)국제장애인 문화교류 강남구협회 회장을 맡아 왔다. 정 이사장은 이 단체를 통해 동화책의 내용을 뮤지컬 시나리오로 제작해 발달장애인 뮤지컬 공연을 매년 연말에 개최해왔다. 그는 “발달장애인의 어린 시절의 상황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표현하는 방법으로 연극을 생각했고, 연극을 하다 노래도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작사·작곡으로 노래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준성씨가 장애가 있음에도 일반 학교를 보냈고, 또 골프와 수영 등 배우게 하며 준성씨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준성씨가 정상인으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감수했다. 특히 정 이사장은 “어느날 아이가 골프를 하고 싶다고 해서 9살쯤 재미로 하라고 등록해줬는데 주위에서 골프 신동이라는 등 아주 난리가 났었다”며 “골프 치려고 올라가면 1000타 이상 쳐야 내려올 정도로 골프에 심취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골프를 배우는 게 계기가 돼 ‘발달장애인 골프팀’을 만들어 촉각을 살리는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남희 생활과학지식센터 이사장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남희 생활과학지식센터 이사장이 최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1.31.

◆아들 미래 위해 ‘평생교육원 건립’ 다짐

정 이사장은 준성씨가 점차 자라면서 그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컸다.

그는 “아이가 중학교 2~3학년 정도 다니고 있을 때 아이의 미래가 걱정됐다”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평생교육원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전국에 장애인 평생교육원을 운영하는 곳을 찾기도 하고 일반 평생교육원도 찾아다니며 발달장애인에게 맞는 기본자료를 수집했다.

이후 정 이사장은 2016년 5~6월 강남구청 사회복지과에 발달장애인 평생교육 기획안을 제출했지만 “가당치도 않은 소리 하지 말라”며 서류 접수를 거부했다. 하지만 당시 정 이사장은 평생교육법과 장애인법 등을 다 숙지하고 있었던 터라 법을 갖고 얘기하는 그를 강남구청 사회복지과 직원이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결국 강남구청 사회복지과는 정 이사장이 제출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 기획안’을 접수했고 2018년 1월 서울시에 보고됐다.

당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장애인 평생교육법 제정하라”고 삭발을 단행하며 시위하던 때라 고(故) 박원순 시장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정 이사장은 “당시 서울시와 강남구는 서로 앙숙처럼 의견을 받아주지 않으면서 행정상 대립하고 있던 때였다”며 “그런 상황에 내가 올린 기획안으로 서울시와 조건적 타협하는 훈훈한 계기가 됐고, 2020년 강남구에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원이 증축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의 정치적 스킬로 박원순 시장의 고민도 해결하고 강남구의 예비비가 전국 어디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활용할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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