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속감 심어준 ‘청바지’
동아리 학생에게 ‘대장님’ 불려
보호종료 아동 위한, 행보 주목
“청소년 투자, 사회 위한 투자”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최수아 기자] “문화는 유전자와 같습니다.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면 영향을 받는 사람이 생깁니다. 저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유전자를 전달하고 싶어요. 그들이 또 다른 청소년들에게 길이 되도록 하는 그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문화는 유전자와 같다고들 한다. 누군가에서 누군가에 전해지는 생활양식이 그들의 DNA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문화적 소양은 무척 중요하다. 그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고 다음 세대의 문화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들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길라잡이가 되고 싶어하고 그간 청소년 문화에 일정 정도 역할을 해온 사람이 있다. 바로 경찰관이자 경찰을 교육하는 교수요원인 서민수 교수다. 그는 십여년간 청소년 문화 콘텐츠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청소년 문화 대물림에 앞장서

서 교수는 청소년들에게 문화적 유전자를 전달하는 길잡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10년간 ‘청소년이 바라는 지구대(청바지)’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청소년들이 문화적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 같은 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물으니 서 교수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경험했던 문화적 유전자의 대물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부산 출신으로, 어린 시절 몸이 약해 초·중학교를 외갓집이 있는 거제도에서 성장했다. 학교 근처 서점에서 몰래 책을 읽던 조용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서 교수는 “(청소년 시절) 교생을 준비하던 서점 주인인 누나가 문학 동아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며 “그 누나의 주선으로 깡시골에서 잡지 발간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경험하고 동아리 회장도 맡았다”고 회고했다.

서 교수는 이를 “문화적 대물림”이라고 설명하며 이런 경험으로 인해 오늘날 청바지 동아리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30년이 지나 내가 청바지 동아리를 운영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며 “학창 시절 어떤 영향을 받았냐에 따라 성인이 돼서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깨달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가 최근까지 운영했던 청바지 동아리는 범죄 예방 캠페인, 지역 스포츠 살리기, 교육, 문화, 체육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의 건강한 성장에 앞장섰다. 1기 20명을 시작으로 동아리는 매년 150~200명의 고등학생이 참여하는 동아리로 성장하며 지역에서 인정받았다. 서 교수는 한 해 운영비로만 800~900만원의 금액을 자비로 부담했는데 그렇게까지 한 배경에 대 “내가 받았던 혜택, 문화적 유전자를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청소년이 바라는 지구대(청바지)’ 동아리 소속 청소년들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활동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청바지 동아리 측 제공)
‘청소년이 바라는 지구대(청바지)’ 동아리 소속 청소년들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활동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청바지 동아리 측 제공)

◆‘아들 방황’계기로 동아리 설립

서 교수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동아리를 운영하게 된 또 다른 계기는 큰아들이었다. 서 교수는 스스로가 ‘근사한 아빠’였다고 자부해 왔는데 수사 업무로 아들에게 소홀해지자 아들의 방황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아이를 위해 청소년 업무로 부서를 바꿨고 아이의 대학 진로를 고민하다가 청소년들이 활동 공간을 찾게 됐다. 그는 “그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동아리가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청바지 동아리’가 탄생한 배경인데, 당시는 생각지 못했지만 청소년들의 문화를 일궈 좋은 영향을 주는 문화적 대물림으로 영글길 바랐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들 가운데는 서 교수 자신처럼 같은 일을 하는 아이가 나타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청바지 동아리는 학생들 스스로 운영하는 방식이다. 백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모이기 때문에 일을 더 많이 한다는 의미의 ‘일꾼’을 뽑고 그들을 통해 스스로 기획하고 운영한다. 서 교수는 자금과 필요 설비 등을 준비할 뿐이다. 

청바지 동아리는 청소년들에게 강한 소속감과 자존감을 심어줬다. 실제로 청바지 동아리 소속 학생들은 서 교수를 ‘대장님’이라고 부르며 큰 애정을 보이고 있다. 또 동아리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은 자신감을 회복하고,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재로 성장했다. 최근 동아리 활동을 했던 학생 중 한 명은 경찰이 되기도 했다.

동아리 활동이 청소년에게 긍정적 영향을 끼친 요인에는 서 교수가 청소년과 소통하며 그들의 고민 해결에 진심으로 귀 기울였던 과정도 한몫했다.

청소년들과 소통하며 겪은 일화도 들려줬는데, 그는 “한번은 새벽 1시에 한 학생이 ‘ㅋㅋ’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당시 고민하다가 ‘ㅋㅋㅋㅋ’ 4개로 답장했더니 두 배의 ‘ㅋ’이 돌아왔다. 그날 대화는 수백개의 ‘ㅋ’이 오갔다”고 말했다. 이어 “그 학생은 3개월 뒤에 친구의 범죄 피해 사실을 알리며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인정 절차를 밟고 있었던 것 같다”며 “처음 문자를 무시했다면 그 범죄 신고는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청소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 교수는 “아이들은 짧고 빠르고 간편한 소통을 선호한다”며 “길고 복잡한 말보다는 짧은 메시지, 이모지, 짤 등을 활용해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자금난·안전문제, 큰 어려움”

하지만 청바지 동아리 운영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부족이었다. 그는 “이들에게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지만, 공무원 신분으로 인해 후원받기가 쉽지 않다”며 “그런데도 매년 1000만원 가량의 자비를 들여 동아리를 운영 했었다”고 전했다.

청소년들의 ‘안전’ 문제도 늘 걱정되는 대목이었다. 서 교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안전뿐만 아니라 심리적 안전도 중요하다”며 “성희롱이나 부적절한 일 등은 청바지의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매년 청바지 동아리 발대식에서 회원들에게 안전을 강조하는 건 이 때문이다. 서 교수는 “청바지는 내일 당장 없어질 수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는 말 한마디라도 실수하면 청바지는 당장이라도 폭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의 덕분인지 지난 10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고가 없었다. 서 교수는 “회원들이 스스로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준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다 보니 되려 역효과도 낫다. 서 교수는 “아이가 만약에 사고를 당하면 모든 책임을 내가 져야 한다”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다 보니 그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지난 10년간 해오던 청바지 운영을 지난 2022년에 마지막 발대식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지난 10년간의 소회를 “청소년을 위한 투자는 사회를 위한 투자”라며 앞으로도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작은 것이었지만 문화적 대물림 현상을 본인도 겪었고 청바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중요성‧필요성 역시 감지했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이 바라는 지구대(청바지)’ 소속 청소년들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서민수 경찰인재개발원 교수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이 바라는 지구대(청바지)’ 소속 청소년들에게 받은 편지를 보여주고 있다.

◆“보호종료아동의 셰어하우스 계획도“

그는 현재 보호종료 아동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보호종료 아동은 보육원이나 위탁가정에서 자라다가 만 18세가 되면 시설을 떠나야 하는 아동이다. 이들은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해 경제적·정서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서 교수는 “보호종료 아동은 주변에 단 한 명의 어른도 없다. 하다못해 TV가 안 나오면 아빠나 형제자매에게 물어보면 되는데 이 친구들에게는 진짜 단 한 명도 없다”며 “많은 연구를 보면 그 친구들이 원하는 것 딱 한 가지, ‘그냥 괜찮은 어른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가 보호종료 아동들에게 멘토 역할을 하며 사회적 동반자로 나서고 있는 이유다. 

서 교수는 향후 해보고 싶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로 가출 청소년을 위한 ‘셰어하우스’를 만드는 것을 꼽았다. 그는 “쉼터는 제한이 너무 많다”며 “가출 청소년들이 스스로 숙박부를 쓰고 방을 들어가서 2~3일 지내다가 청소하고 나가면 다음 아이들이 또 들어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청소년 지킴이 역할을 하면서도 본업에도 매진 중이다. 현재 경잘인재개발원에서 학교폭력대응역량향상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교수 역할에 대해 경찰관이 현장에서 실수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치안 서비스를 할 수 있게끔 지원하는 업무라고 설명했다.

현장 경찰관들 사이에서는 ‘전화 잘 받는 교수님’으로 통한다. 서 교수는 “현장에서 무슨 일이 생기거나 신고가 들어오면 일단 당황한다”며 “그런 상황에서 아는 것도 까먹게 되는데, 그럴 때 전화해서 같이 의논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침·저녁·새벽·주말이든 언제든지 전화를 잘 받아줘서 ‘전화 잘 받는 교수님’이라는 말을 듣는 게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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