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한땀협동조합 곽경희씨
배냇저고리, 수의 만들어 기부
30년간 한복점 운영한 베테랑
급성간염 앓은 후 봉사 시작
LG복지재단 ‘의인상’ 수상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회적 기업 ‘바늘한땀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곽경희씨가 최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씨는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만들어 20년간 기부한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LG복지재단에서 의인상을 받았다. ⓒ천지일보 2023.12.0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회적 기업 ‘바늘한땀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곽경희씨가 최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씨는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만들어 20년간 기부한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LG복지재단에서 의인상을 받았다. ⓒ천지일보 2023.12.06.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과거에 여자는 바느질하면 팔자가 세다는 말을 들었다. 고생을 사서 하는 데다 평생 바느질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들이 잠든 방에서 호롱불을 켜고 밤잠을 줄여가며 바느질하던 게 배고프던 시절 어머니들의 모습이었다.

옛말은 틀리지 않은 듯하다. 사회적 기업 ‘바늘한땀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곽경희씨는 수십년째 바느질을 놓지 못하고 있다. 곽씨는 한복점을 운영해 온 솜씨로 20년째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만들어 기부하고 있다. 곽씨가 어머니의 ‘고귀한 노동’과도 같은 바느질로 한 땀 한 땀 공들여 만든 옷은 입양 가는 미혼모 아기와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독거노인에게 따뜻한 위로가 됐다.

곽씨는 이러한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LG복지재단에서 의인상을 받았다. 천지일보는 지난달 16일 곽씨를 바늘한땀협동조합 작업실에서 만났다. 곽씨는 “나는 봉사한 이야기할 때가 가장 재미있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30년 한복 인생의 시작

곽씨는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일찍 풍으로 쓰러진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집안의 가장 노릇을 했다. 곽씨도 집안 살림에 보태려고 상고 졸업 후 바로 회사에 들어갔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직장이었지만 1~2년 다니자 답답함을 느꼈다. 월급도 동생들 학비 보태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곽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우연히 신문에서 한복에 관한 기사를 봤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에게 솜씨가 좋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던 곽씨는 한복 만들기를 평생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신촌 의상실에 들어갔지만 3개월 만에 후회했다. 3개월이면 한복 만드는 법을 다 배워서 돈을 벌 줄 알았는데 기대와 달리 미싱도 배울 수 없었던 것이다.

청소하고 핀 닦고 속치마 받는 일만 하다가 8개월째 됐을 때 곽씨는 짐을 쌌다. 집으로 명예롭지 못한 귀환을 한 날 밤. 자다가 눈을 떠서 동생들이 밤늦도록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여기서 그만두고 오면 나중에 동생들이 잘못해도 야단을 못 치겠더라고요. 하다 말고 온 언니가 뭘 야단을 치겠어요.”

동생들에게 떳떳한 언니가 되고 싶었던 곽씨는 다시 의상실로 돌아갔다. 이전과 달리 더 이상 가르쳐주기만을 기다리지 않았다. 곽씨는 집에서 싸 들고 간 신문지를 치마 형태로 접어가며 저녁마다 연습했다. 그 결과 한복을 시작한 지 1년 반 만에 기능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미혼모실서 깨달은 봉사의 깊이

연신내역에 차린 한복점은 잘됐다. 하지만 너무 잘됐던 탓일까. 잠잘 시간도 없이 일하다 보니 2005년경 건강에 빨간불이 켜졌다. 급성간염으로 간 수치가 정상 수치 40에서 2000까지 올라갔다. 아들도 못 알아볼 정도로 아팠던 경험은 곽씨의 인생을 돌아보게 했다. 곽씨는 건강을 회복한 뒤 동생들 뒷바라지를 위해 접어뒀던 공부를 시작했다. 42세에 배화여대 전통의상학과에 늦깎이 대학생으로 입학해 공부의 한을 풀었다. 이후 공부에 대한 욕심이 더 생겨 방송통신대학교에 편입했다.

곽씨가 병원에 있으면서 또 한 가지 마음먹었던 건 ‘봉사’였다. 곽씨는 퇴원한 후 봉사활동을 5000여 가지는 찾아봤다. 그러나 대부분은 평생 바느질만 해온 곽씨에게 맞지 않는 일들뿐이었다. 그중에서 눈에 들어온 건 아이들 돌보는 일이었다. 곽씨는 토요일마다 천사원에서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추석 때 한번은 아이들에게 직접 만든 한복을 입혀 봤다. “애들이 (한복 입은 모습이) 너무 예뻤어요. 애들도 한복 입은 게 마음에 들었는지 만지지 못하게 할 정도였다니까요. 그때 ‘이렇게만 다닐 게 아니고 내가 가진 재능으로 봉사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회적 기업 ‘바늘한땀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곽경희씨가 최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씨는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만들어 20년간 기부한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LG복지재단에서 의인상을 받았다. ⓒ천지일보 2023.12.06.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회적 기업 ‘바늘한땀협동조합’을 운영하는 곽경희씨가 최근 서울 은평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곽씨는 배냇저고리와 수의를 만들어 20년간 기부한 선행을 인정받아 지난 10월 LG복지재단에서 의인상을 받았다. ⓒ천지일보 2023.12.06.

아이들에게서 재능기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은 뒤 처음 시작한 건 ‘수의’ 만들기 봉사였다. 병원에서 수의도 없이 침대 시트에 싸여서 돌아가는 환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곽씨는 6개월간 수의 만드는 법을 독학으로 터득했다. 이후 곽씨가 수의를 기부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한 해에 수의가 최소 7~8벌은 나갔다. 수의는 한 벌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이 많이 가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곽씨는 20여 가지 되는 수의의 가짓수를 줄이지 않는다고 한다.

“수의는 마지막 옷이잖아요. 저한테 받는 분은 살면서 어려움을 많이 겪으신 분들이에요. 제가 드리는 옷만큼은 최고로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가짓수도 줄이지 않고 있어요.”

곽씨는 세상을 떠나는 노인뿐 아니라 세상의 빛을 본 아이들을 위한 옷도 만들고 있다. 방통대에 다닐 당시 구세군 두리홈 미혼모실에서 배냇저고리 만들기 강의를 하게 됐다. 배냇저고리 만드는 건 단순히 옷 만드는 일로 그치지 않았다. 곽씨에게 배워서 아이에게 줄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든 미혼모들이 입양하려던 결심을 돌이키기 시작했다. 곽씨는 “옷이 그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애들(미혼모)이 옷이 다 되니까 배 위에 올리더라고요. ‘이게 네 옷이야’ 하면서요. 그러고는 입양을 안 보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부터 봉사의 깊이를 알기 시작했어요.”

곽씨는 미혼모실에 갈 때면 어느덧 엄마 뱃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들을 안으며 보람을 느낀다. 언제 가도 한 솥 가득 보글보글 끓고 있는 ‘미혼모실 미역국’은 곽씨가 먹어본 미역국 중 가장 맛있는 미역국이다.

◆“봉사도 전염되더라”

곽씨는 “봉사를 열심히 할수록 주변에도 퍼진다. 이것(봉사)도 전염병이 아닌가 싶다”며 웃었다. 곽씨는 배냇저고리 봉사는 ‘엄마 품속 천사봉사대’, 수의 봉사는 ‘천사의 날개’라는 이름으로 각각 봉사대를 꾸려 여러 손길과 함께 일해왔다.

곽씨의 이 같은 ‘봉사 바이러스’는 가족에게도 전염됐다. 곽씨의 동생네 가족 등 총 7개팀으로 구성된 가족 봉사대는 10년째 봉사하고 있다. 중도 포기자가 생겨날 법도 하지만 지금껏 한 사람도 그만두지 않고 봉사하고 있다. 곽씨 동생들은 곽씨가 자기네를 두고 갈까 오히려 겁낼 정도라고 한다.

곽씨 아들은 처음에는 끌려가다시피 양로원에 가곤 했다. 할머니들 옆에 잘 가지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할머니 발톱을 깎기 시작했다. 양로원 할머니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통곡하기도 했다. 곽씨 아들은 현재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아들 이야기를 하던 곽씨는 언제까지 봉사를 계속할 거냐는 물음에 “봉사도 자식 같다”고 답했다. “저에게 봉사는 자식 같은 존재예요. 자식을 언제까지 키울지 정해놓지 않잖아요. 봉사도 자식 키우는 것처럼 끝까지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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