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세간에 방탄소년단은 의리가 있고, 블랙핑크는 의리가 없다는 말이 돌았다. 방탄소년단은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블랙핑크는 재계약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재계약이 의리와 연결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블랙핑크나 방탄소년단은 각각 모델이 다르므로 의리가 있다거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는다. 이점에 주목해 모델을 진화시키는 게 핵심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방탄소년단은 YG의 아티스트 정체성 DNA를 갖고 있다. 바로 빅뱅의 아티스트 유전자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빅뱅의 아티스트 유전자는 작사·작곡·프로듀싱 능력을 갖춘 아이돌 멤버의 음악적 역량이었다. 당연히 가창력은 기본 전제로 했다. 이런 면은 기존의 아이돌에게는 약점이었고, 빅뱅은 이를 본격적으로 극복한 사례였다. 기존 아이돌은 기획육성형 아이돌이었기 때문이다. 빅뱅만은 아니다. YG에는 작사·작곡·프로듀싱 능력을 지닌 가수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그런데도 블랙핑크는 YG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 그들은 글로벌 패셔니스타의 장점을 더 많이 갖고 있었다.

방탄소년단은 일찍부터 그들의 음악성 등의 재능을 갖고 있었기에 개별 활동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역설적으로 완전체 활동을 더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여력이 되었다. 반대로 개별 뮤지션 역량을 상대적으로 갖고 있지 않은 블랙핑크는 완전체 활동을 애초에 지속할 수가 없었다. 하루빨리 개별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여성 걸그룹은 생명력이 짧기 때문이다.

사실 개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블랙핑크의 세계적인 위상이 남다른 면을 생각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걸그룹 멤버들은 개별 활동을 못 하거나 해도 성공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특정 멤버만 골라서 소속사가 뒷받침하고 다른 멤버는 병풍이 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심지어 일정한 시한이 지나면 자동으로 폐기되는 사례가 많았다. 재계약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걸그룹의 생명력은 보이그룹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기에 머물렀고, 얼마 안 있어 기억조차 희미했다.

요컨대, 이미 태생부터 블랙핑크를 지속 가능한 아티스트 개념으로 보지 않았기에 오히려 오늘날 YG의 고충이 깊어진 셈이다. 블랙핑크가 아시아를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월드 스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애초에 충분히 예측했다면, 방탄소년단과 같은 활동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걸그룹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려는 모델을 일찍부터 고안했다면 블랙핑크 멤버들은 YG와 재계약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블랙핑크의 재계약 불발은 글로벌 팬덤에 대해서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을 갖지 못한 결과였다. 이전과 매우 달라진 K-POP의 세계적 위상에 부합하지 않는 모델이었다. 빅뱅 이후 보이그룹에서 성립시킨 아티스트 중심의 아이돌 모델을 YG가 잘 보여주었음에도 걸그룹까지 확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이브나 JYP에서 이러한 모델을 스핀오프 하거나 진화시켰다. 물론 이러한 점에서 YG는 K-POP의 브랜드나 외연 확장 면에서 이바지했다.

언제나 대중문화 콘텐츠는 상대적으로 마이너 트렌드에서 미래 잭폿이 터지는 법이다. 이를 간과한다면 언제든 블랙핑크 같은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K-콘텐츠 기획 제작사들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가 만들어낸 가능성도 챙기지 못하는 것은 개별적인 기업은 물론 국가적으로 손해다. 물론 블랙핑크 모델이 방탄소년단의 모델에 비해 떨어진다고 할 수 없다. YG와 완전체 활동 계약은 유효하기 때문이다. 좀 더 개별적인 활동에 치중하면서 완전체 활동을 유지하는 가운데 YG 스타일을 실현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기획력이 개별적 역량보다 뛰어나다면 그 또한 K-POP 모델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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