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만약 영화 ‘서울의 봄’이 역사적 인물과 사실에 완전히 기반하지 않고, 허구적인 인물로 스토리를 창조하며 시공간 배경과 소재만 차용을 했다면 반응이 폭발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앞선 한국 영화들이 실화 인물과 소재를 강조했는데도 실패한 상당한 요인이 여기에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이 불러온 대중적 주목과 그에 따른 흥행은 더 이상 관객들이 사실에 치중하지 않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팩트체크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 중요한 미디어 상황이 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객관적 사실의 강조가 오히려 잘못 이용되거나 현실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실의 확인만으로는 미래의 비전이나 자기실현적 의지를 갖기 힘들 수 있다.

또한 수많은 사실 속에서 맥락과 의미를 찾는 것은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대단히 피로를 유발할 수 있다. 정보의 쓰나미가 TMI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낯설지 않다. 더구나 단순 사실의 나열은 흥미를 감소시킨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바쁘고 인지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상이 너무 많아졌다.

그 때문에 큐레이션 콘텐츠의 역할 특히, 스토리텔링을 통한 사실과 사실 속의 맥락과 진실을 전해주는 시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과 맥락에서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에 성공했던 것이다.

다만 영화 ‘서울의 봄’은 자칫 좌절감을 줄 수 있는 콘텐츠이다. 성공한 쿠데타를 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 사실은 확정되어 있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 일색이다. 그 때문에 SNS 심박수 챌린지나 상영관 앞 두더지 게임의 설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이미 좌절된 과거의 사실을 통해서 분노유발자의 역할을 하는 영화에 열광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그쳐서는 곤란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인기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정통 사극이지만, 영화 ‘서울의 봄’과 함께 최근 사극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은 현대사를 다루고 있고,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고려 시대의 전쟁을 다루고 있으며, 실패한 전쟁이 아닌 승리한 전쟁이라는 면에서 다른 점이 크다. 아울러 두 작품이 내란과 외란(外亂)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를 수는 있다.

하지만, 맥락과 본질 면에서 비슷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위기 상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며 고통과 괴로움을 겪게 될지 충분히 상기할 수 있게 한다. 특히 공정하지 않은 사회의 형성으로 그 피해는 약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두 작품은 모두 팩션(Faction)이라기보다는 팩추얼(Factual)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언론에서 지적하는 바와 사뭇 다르다.

팩션은 본래 약간의 역사적 사실에 대부분을 상상력에 의존하면서 본질을 추리해 가는 방식이다. 즉, 추리물에 역사극이 결합하였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팩추얼 콘텐츠는 좀 더 사실에 더 바탕을 둔다. 팩추얼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결합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팩추얼은 무엇보다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건의 추이에 초점을 맞춘다. 팩션은 상상의 설득력을 통해서 사실을 넘어 진실에서 공감을 얻으려고 한다.

팩션에서 팩추얼로 넘어가는 데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2000년대를 넘어 2010년대 전까지 ‘다빈치 코드’ 같은 팩션 스타일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2010년대 스마트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가짜뉴스의 범람은 팩트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서면서 단순히 팩트 체크에만 한정되는 것은 피로감을 낳게 되었다. 더구나 콘텐츠 면에서는 사극이 판타지로 도피하게 되면서 정통 사극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너무 사실에서 멀어지면서 진실조차 혼란스럽게 했다. 그 때문에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맥락을 놓치지 않는 픽션 콘텐츠가 필요해졌고 그것이 바로 팩추얼 장르인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1980년 12월 12일 9시간 동안 일어났던 군사 반란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등장인물의 면모나 제작진의 세계관에 다른 상상력은 부차적이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도 마찬가지다. 강감찬 등 주요 등장인물의 영웅성이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고려와 거란 사이에 왜 전쟁을 하게 되었고 그 전쟁이 어떻게 상황이 진전되는지 그 상황에서 각 인간 군상은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며 움직였는지 그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서 판단은 현재에서 오로지 시청자들이 하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는 연출과 편집을 할 뿐이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간 군상들이 겹치기도 한다. 비록 고려 시대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는 자신의 안위와 입신양명을 위해 배신을 하거나 변절하는 인물들이 다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고려 황제의 명과 관계없이 도망하거나 항복을 하는 이들도 부지기수이며 심지어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기 위해 황제를 없애려는 이들도 등장한다. 혼란스러운 시기를 맞아 그것을 대의 차원에서 극복하는 데 힘을 모으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만을 탐하는 이들의 여러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즉, 내부의 적과 싸우는 분량이 상당하다. 그런 가운데 원칙과 가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노력으로 마침내 거란을 이기는 과정은 매우 극적이고 통쾌하며 미래의 희망으로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을 봐야 하는 이유가 된다. 전두광에 대한 분노로 포스터를 찢거나 두더지만 때릴 수는 없고 승리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