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노량’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북소리다. 이순신은 직접 북을 울리며 독려한다. 적장인 시마즈 요시히로는 북소리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린다. 반대로 조선과 명나라 수군은 그 북소리에 힘을 얻어 기세를 올리고 적을 분멸한다. 그런데 북소리는 이순신이 쓰러진 것 같은데 계속 울린다. 북소리가 계속 끊이지 않고 울렸기 때문에 노량 해전은 승리의 전투가 될 수 있었다. 그 북소리는 이순신에 이어 이회가 울리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리더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인식하게 한다.

이 장면의 설정은 영화 ‘노량’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기존에 나온 여러 출판물을 보면 이미 이순신이 직접 북을 울리며 독려한 내용이 나온다. 그렇다면 정말 이순신이 북을 직접 울렸던 것일까? 그 역사적 기록은 어떠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조실록> 선조 31(1598)년 11월 25일의 기록을 보면 “통제사 이순신(李舜臣)은 맨 앞에 서서 싸우다가 탄환에 목숨을 잃었다”라고 했다. 여기에서는 이순신이 직접 북을 직접 치며 진두지휘했다는 대목은 없다.

다음으로 <선조실록> 선조 32(1599)년 2월 8일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노량(露梁)의 전공은 모두 이순신이 힘써 싸워 이룬 것인데 불행히 탄환을 맞자 군관 송희립(宋希立) 등 30여인이 상인(喪人)의 입을 막아 곡성(哭聲)을 내지 않고 재촉하여 생시나 다름없이 영각(令角)을 불어 모든 배가 주장(主將)의 죽음을 알지 못하게 해 승세를 이루었다”라고 했다. 여기에서 상인(喪人)은 상을 당한 사람 즉 아들 이회를 의미할 수 있었다.

또한 영각(令角)은 긴 대나무 끝에 쇠뿔을 달아 불던 악기를 말한다. 북을 울리는 소리와는 다른 것이다. 여기에서 이순신이 직접 북을 쳤다는 대목은 없다. 이회가 북을 쳤다는 대목은 없고 이회는 곡을 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예 이순신이나 이회가 북을 친 기록이 없는 것일까? <선조실록> 선조 30(1597)년 6월 2일의 기록을 보면 관련 대목이 있다. 이회나 송희립이 아닌 다른 핵심적인 인물이 또 하나 등장한다.

“이문욱(李文彧)이 노량(露梁) 해전에서 이순신이 적탄을 맞고 쓰러지니 그 아들이 곡을 하여 군심(軍心)이 당황하자 이문욱이 곡을 멈추게 하면서 옷으로 시신을 덮고 북을 울려 군사의 사기를 올리면서 전진케 하기도 하였다”라고 되어 있었다. 이문욱은 손문욱(孫文彧)의 다른 이름으로 그는 일본말이 능숙해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의 참모 역할을 했다. 여기에서는 이순신이 북을 울렸다는 대목은 없고, 이문욱이 북을 울렸다는 내용만 적혀 있다. 미뤄 짐작해보면 이순신이 북을 쳤던 것을 이문욱이 계속 쳤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의병장 조경남(趙慶男, 1570~1641)이 저술한 <난중잡록(亂中雜錄)>에 보면 해당 내용이 더 있다.

“이순신이 친히 북채를 잡고 먼저 추격하며 적을 죽이는데, 적의 조총병이 배꼬리에 엎드렸다가 이순신에게 일제히 쏘았다. 이순신이 총알에 맞았다.”

직접적으로 이순신이 북을 치며 독려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이런 내용 뒤에 북을 누가 쳤는지도 적었다.

“이때 그 아들 이회가 배에 있다가 아버지의 분부에 따라 북을 울리며 기를 휘둘렀다”라고 되어 있다. 즉 <난중잡록>에서는 이순신이 직접 아들 이회에게 계속 북을 울리라는 명을 내린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점은 많은 출판물에 간접 인용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역사서는 아니지만,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이순신전>을 보면 해당 내용이 있다. “순신이 가로되 ‘우리 승패와 사생이 이번 싸움에 있다’ 하고 한손으로 북을 치며 소리를 우레와 같이 지르고 먼저 앞으로 향하니 모든 군사가 뒤를 따라 적을 쳤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왜 이순신이 애써 북을 치며 진군시키고 독려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기록과 영화의 형상화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짐작해야 하는 것일까? 소신을 가지고 실력으로 정의와 명분을 지키면서 전투의 승리를 이끈 이순신은 자신의 입지를 다했다. 그 상징이자 실체가 바로 북소리다. 자신이 스스로 몸을 아까지 않고 분투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 북소리는 이순신의 정신과 가치를 그대로 계승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정 인물에 관계없이 자리에 따라 해야 할 바를 충실히 하는 것 그것이 공인의 의무이자 존재 이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 북소리를 계승하는 리더의 모습일 것이다. 그것을 우리 국민들도 기대하고 있으며 전투의 리더뿐만 아니라 각 분야의 리더들에게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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