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과거 한국의 유학생들이 미국 유학 시 쉽게 학위를 받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안을 서구 사회에서 찾는 논문을 쓰는 방식이었다.

특히, 유교주의에 따른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으로 서구식 사고를 강조할수록 논문은 쉽게 통과될 수 있다. 이러한 논문들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자료를 구성하게 되었고 서양학자들이나 연구자, 저술가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 때문에 오늘날에도 추하면 이런 이들은 한국의 문제점들을 지적할 때, 원인으로 유교주의를 지적한다. 잘못된 진단은 오히려 잘못된 조치로 오히려 악화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낳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도 그 원인이 유교 때문이라는 엉뚱한 지적이 비등했다. 하지만 외환위기는 유교와는 상관이 없고 세계화 시대에 섣불렀던 금융 경제체제의 미비나 달라진 외환 환경에 대한 방어의 결함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유교에 근본 원인을 두는 관점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유교주의에 따라서 사고하고 실천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또한, 보편적으로 세계에 존재하는 공동체적 가치관이나 사회적 문화를 유교주의로 모두 치환하는 것은 오류다. 특히, 제3세계일수록 한국과 비슷한 문화적 가치를 보인다. 무엇보다 사회과학적인 관점에서 유교라는 변수를 제거하면 한국이 가진 문제점들이 해결되는지 알 수가 없다.

최근 마크 맨슨이라는 인터넷 셀럽이 한국의 자살 문제 등을 분석한 글을 올리면서 그 원인을 유교주의에 두고 있는데 이 또한 앞서 서구인들의 잘못된 진단과 같았다. 구독자 140만명을 보유한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한 ‘세상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하다’가 바로 그것이다. 그가 부각한 주장의 요체를 몇 가지 볼 수 있다.

마크 맨슨은 “유교 문화에서는 개인보다 가족을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간다. 가족을 위해 더 많이 희생할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유교 문화만 그런 것은 아니다. “우울함을 느껴 일을 멈추면 가족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게으른 인간’ 취급을 받게 된다”라고 말한 부분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의 부족부터 아랍의 이슬람교에 이르기까지 가족을 중시하고 가족을 위해 더 헌신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문화는 많다. 이는 단지 문화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유물론 국가인 중국에서도 가족을 많이 생각하는 것은 여전하다. 베트남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도 가족을 매우 중시한다. 그들 모두 유교와 관련이 없지만, 가족 구성원 개인이 전체를 생각하는 경향은 다른 문화권이나 국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또한 “한국인들은 정신 건강에 대해 말하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가족주의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유교나 가족주의와 관계없이 우리는 과거 상담문화가 없었다. 서구도 정신과 상담문화는 오래되지 않았다.

맨슨은 “슬프게도 한국은 유교의 가장 나쁜 부분인 수치심과 남을 판단하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반면, 가족이나 지역 사회와의 친밀감을 저버렸다”라고 했다. 수치심에 관련해서도 유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측면이 강하다. 특히 공동체 사회일수록 사회적 관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수치심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남을 판단하는 부분을 극대화하는 것도 밀집된 사회적 관계가 강할수록 일어나는 현상이지 유교와는 관련이 없다.

그는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 “한편 그들은 자본주의의 최악의 단면인 현란한 물질주의와 돈벌이에 대한 집착을 강조하는 반면 가장 좋은 부분인 자기표현과 개인주의는 무시했다”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장점이 자기표현이고, 개인주의인지 알 수가 없다. 이는 자본주의와 무관하다. 물질주의와 돈벌이는 한국인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를 통해서 물질주의와 돈벌이가 우선시 되었고 이는 한국 전쟁 이후에 어려워진 경제 과정에서 더욱 심해졌다. 더구나 권위주의 정부에서 압축 성장을 하면서 갑자기 물질적 풍요를 누렸지만 불균형한 편차가 존재했다. 즉 개인들의 가치관 때문에 경쟁, 스트레스, 나아가 자살률 1위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무분별한 시장주의가 횡행하고 특정인들을 중심으로 자원을 독점하고 이익을 기득권으로 공고하게 만들면서 개인들은 자기들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서구처럼 고성장기에 복지제도를 완벽하게 구축할 수 없었고 개인 그리고 가족을 중심으로 위기를 돌파해야 했다.

한국의 근현대에 걸친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법 나아가 정책적 흐름을 간과하고 한국인 개인들의 가치관에 있을 것 같은 유교주의는 편의주의적인 접근방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진단한다고 한국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개인들에게 필요하다면 이제 과거 특정한 시대에 가능했던 사회적 모델이나 고성장기에 성공의 기준들을 바꾸는 문화적 개선이나 혁명이 필요할 뿐이다. 이미 죽어버린 유교주의 탓해봤자 해결되는 것, 달라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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