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합의 폐기로 우발적 충돌 위험성… 추가 핵실험 우려도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 심화… 미 대선 중요 변수될 가능성

굴욕적인 한일관계 개선… 美인태전략 구상 위한 오랜 숙원

한중관계 관리 여론 높지만 尹정부 적극 개선 나설지 미지수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공동회견장 입장하는 한미일 정상. (출처: 연합뉴스)
지난 8월 캠프 데이비드 공동회견장 입장하는 한미일 정상. (출처: 연합뉴스)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반년이 훨씬 넘는 남북 단절의 시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한반도를 둘러싼 양측 간 힘겨루기가 위험수위에 다다르고 있다.

남북 모두 대화를 위한 어떤 제스처도 없고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보이질 않는다. 남북이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으르렁거릴 뿐이다. 남북의 날 세움에 일촉즉발의 한반도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북한은 지난 한 해 ‘핵’ ‘핵’ ‘핵’만을 외쳐대다가 핵 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해 핵 의지를 다졌고, 이에 맞서 윤석열 정권은 힘에 의한 평화라는 강대강 기조 속 대북 확장억제 강화에 ‘올인’했다.

이 같은 행태가 반복될 태세라 올해도 한반도 정세가 암울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다만 오는 4월에 있을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과 맞물려 한반도 평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동북아 정세도 요동쳤다.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협력 관계는 한 단계 더 도약했고, 반면 북한은 9월 러시아와의 전격적 정상회담을 통해 북중러 3국 결집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이념외교이자 가치외교로 대변되는 윤 정권의 나홀로 외교는 미국과 일본에 굴욕적일 만큼 집착하는 대신 중국·러시아의 관계는 불안정성이 더욱 커졌고,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대립 구도는 한층 짙어졌다. 윤 정권의 편향외교와는 달리 그 속에서도 미일과 중국은 실리를 찾는 행보에 여념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런 대결 구도를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중관계 관리가 중요하지만 미일에 편승한 외교 행태로 볼 때 윤 정부가 적극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한 외교 전문가는 “윤 정부 안보실을 극우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는 게 문제”라면서 “이념적 잣대로 중국을 바라본다는 것인데, 하지만 미일을 넘어 중국과의 관계에도 힘을 쏟아야한다는 비판 여론이 많기 때문에 시늉을 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北핵미사일 질주-南장억제 반복될듯

북한은 작년 한 해 남북 간 연락선을 차단하는 등 대남, 대미 대화에는 관심을 일절 두지 않고 핵 무력 고도화에 집중했다. 북한은 3월 전술핵탄두 ‘화산-31’을 공개하며 대남 핵 위협을 노골화했고, 9월에는 핵 무력 정책을 헌법에 명시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대내외에 거듭 선언했다.

또 한미를 때릴 ‘주먹’인 각종 핵투발 수단 개발에도 매진했다. 북한은 특히 미국 본토를 타격권에 둔 고체연료 추진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을 3차례나 시험 발사해 과시했고, 한반도를 들여다 볼 ‘눈’인 군사정찰위성 발사도 3번이나 시도해 결국 우주 궤도에 올렸다. 정찰위성은 탄도미사일로 전용이 가능하다. 유엔 제재 위반이다.

북한은 올해에도 핵·미사일 개발에 전념할 전망이다. 작년 9월 북러 정상 만남을 계기로 본격화한 북러 협력이 북한 정찰위성의 성능 향상이나 ICBM 재진입 기술 등 첨단 국방기술로 이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에서 5선에 성공하면 북한 답방 계획도 구체화할 수 있다.

윤 정부는 확장억제 업그레이드로 맞섰다. 작년 내내 확장억제란 단어가 뉴스를 장식했는데, 어찌나 자주 등장했던지 윤 정부=확장억제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다.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한 전력으로 동맹을 방어한다는 개념이다. 대북 억지력 차원인데, 한미 정상이 지난해 4월 발표한 ‘워싱턴선언’이 대표적인 확장억제 강화책이다.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창설하고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에 따라 7월과 12월 한미 NCG가 두 차례 가동됐고 2차 회의에서는 ‘핵 작전 시나리오’를 한미 연합훈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미군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크게 늘었다. 거의 매달 미 핵항모와 전략폭격기가 번갈아가며 한반도를 드나들었다. 11월 열린 한미안보협의회(SCM)에서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문서인 ‘맞춤형 억제전략(TDS)’이 10년 만에 개정되기도 했다.

남북이 한치도 물러섬이 없는 양상인데, 올해도 어김없이 양측 간 팃포탯(맛대응)은 되풀이될 태세다. 더군다나 윤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빌미 삼아 별반 관계가 없는 지난 2018년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을 효력 정지하자 북한은 전면 파기를 선언하면서 최후의 안전핀이 사실상 무력화된 터라 남북 우발적 군사 충돌 위험성도 한껏 높아졌다.

최근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내 실험용 경수로(ELWR)를 십수 년 만에 완공해 시운전에 들어간 정황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공개되면서 한미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 북한이 실험용 경수로를 본격 가동하기 시작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량을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인데, 올해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라도 할 경우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9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김정은. (출처: 연합뉴스)
지난 9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하는 김정은. (출처: 연합뉴스)

◆진영 대립 가속화는 尹정부 역할도

한미의 북한을 향한 대화 촉구도 형식적인 구애에 그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윤 정부는 대적으로 상정한 북한과 대화할 생각이 아예 없었고, 미측은 상황 관리에만 방점을 둔 바이든판 ‘전략적 인내’에 몰두했단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사태로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안보라인에 극우 성향의 인사가 대거 포진된 윤 정부가 대북 기조를 바꿀 리는 없기 때문에 올해 역시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일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정권이 교체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정책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미국 대선 변수는 남아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달라질 게 별로 없겠지만, 동맹을 경시하는 성향의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들어선다면 윤 정부가 외교정책을 바꿔야 할 만큼 큰 파장이 닥칠 수 있다.

이처럼 남북으로 갈라진 대립 구도는 ‘한미일 대 북중러’ 간의 진영 구도를 심화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지난해 한미일 협력 관계는 더욱 견고해졌고 북러 정상 간 만남을 계기로 북중러 밀착도 가속화하는 양상이다. 올해도 미중 간 갈등 전개,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등 국제 정세가 진영 간 결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구도 형성에는 윤 정부 안보실을 차지하고 있는 친일‧극우세력들의 뉴라이트적 사관도 작동했다는 관측이 만만치 않다. 예컨대 북한, 중국 등을 멸절 대상으로 보는 이들 부류는 이념적 사고에 파묻혀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를 구축하고 우선 한일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시도했다.

강제징용 피해 문제 등 한일 간 과거사 갈등을 일본 가해 기업의 참여나 직접 사과가 없는 데도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라는 해괴한 해법을 들고 나와 마음대로 결정짓고, 더욱이 8월 시작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투기)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평가를 떠넘겼다.

되려 일본 오염수가 문제가 없다는 홍보영상을 수천만원 들여 제작한 윤 정부다. 어느 나라 정부인지 모르겠다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친일‧극우 역사관을 지닌 세력들이 안보실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인데, 단죄하지 못한 역사의 오늘날 현실이라는 전문가 탄식이 흘러나온다.

지난 10월 한미연합도하훈련 모습. (출처: 연합뉴스)
지난 10월 한미연합도하훈련 모습. (출처: 연합뉴스)

◆美동북아 구상 속 한중관리 숙제

이들 부류가 염원한 한일관계 전환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책인 인도‧태평양 전략 해법을 풀 오랜 숙원과도 맞닿아 있다. 대만 문제나 남중국해 문제에서 미일의 하부구조로 한국군을 편입해 유사시 동원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략인데, 한일관계가 풀리지 않으면 한발도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견제가 실질적 목표지만 북한 위협을 문제 삼아 한미일 3국이 군사협력을 높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상 동맹 수준 아니냐는 외교가 일각의 지적도 나오는데, 올해도 한미일 군사협력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는 윤 정부가 한반도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임을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8월 캠프 데이비드 회의에서 채택된 ‘3자 협의에 대한 공약(Commitment to Consult)’ 문서는 북한 문제뿐 아니라 중국이 연관된 인태 지역의 다양한 위기 상황으로까지 한미일의 잠재적 대응 범위를 확대했다. 한미일 협력을 북한의 위협을 넘어 동북아 역내까지 확장하는 걸 공식화한 것이다.

미국 정부가 그토록 원하던 동북아 구상이 완결된 셈이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을 “신기원적인 새 장”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환영했던 이유다. 그럼에도 윤 정부는 한반도에 한정됐던 정책적 시야가 개별 국가 단위를 넘어 인태 지역까지 확장됐다고 홍보하는 현실이다.

한미일 결속이 중국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은 건 당연하다. 또 앞에서는 한중일 협력을 얘기하다가 뒤에서는 대만 문제 등을 언급해 중국을 자극하는 윤 정부가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추진한다니 이뤄질 리가 만무하다. 외교가 일각에선 한중관계 관리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으니 한중관리다 뭐다 형식적 말만 내세운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제기됐다.

북러 군사협력이라는 새로운 틀 속 중국과의 협력 필요성은 더 커졌지만 윤 정부의 안보실이 실질적인 관계 개선에 나설지는 의문 부호가 따른다. 설사 안보실이 한중관계 관리 쪽으로 방향을 틀더라도 또한 대중 견제에 방점을 둔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지속된다면 중국과의 관계 진전을 이뤄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강조점이다.

중국이 북중러 결속에 거리를 둔다지만 안보리 협력 등을 살펴보면 연대 이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해 숱한 북한의 전략적 도발에도 중러의 반대로 유엔 안보리는 단 한 건의 성명이나 결의도 채택하지 못했다. 지금은 한걸음 뒤에 있지만 언제든 상황은 변할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연대는 북중러가 합동 군사훈련 실시로 가닥을 잡을 수도 있어 우려된다. 북중러로 묶이는 데 주춤했던 중국이 미국과의 대립 구도가 확연해지고 한미일 군사협력이 동맹 수준으로까지 확대돼 중국에도 위협으로 인식된다면 북중러 군사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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