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자율주행버스 도입
대화형 AI, 지난해 ‘초 히트’
“노동자의 80%, AI 영향권”
美, 노사간 AI 협력 나서
한국은 아직 제자리걸음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시가 지난달 세계 최초로 심야 자율 주행 버스를 도입했다. 인공지능(AI)이 운전하기에 인간 운전사는 필요하지 않다. 지난해는 챗GPT로 대표되는 대화 언어모델 AI가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AI가 대두되면서 인간의 일자리는 점차 대체된다는 예측은 하루가 멀다고 나온다. 우려를 반영하듯 미국의 제1노조는 빅테크 기업과 AI 협력도 맺었다. 한국은 AI 시대 노동을 맞는 준비가 됐을지 점검해봤다. 

[천지일보=홍수영·유영선·김민희 기자] 밤 11시 40분께 본지 취재진은 종로3가역에서 서울 심야 자율주행버스 ‘A21번’에 몸을 실었다. 운전석에 앉은 남성은 흰색 장갑을 낀 양손을 핸들이 아닌 몸 옆에 축 늘어뜨린 채로 승객을 맞이했다. 그리고는 “뒷좌석에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앉으라”는 시내버스에서 듣지 못하는 낯선 말로 안내했다.

버스 운전대가 더 이상 운전기사의 손이 필요하지 않을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서울시는 지난달 4일부터 A21번 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해외에서 야간 자율주행택시를 운행한 사례가 있지만 다수의 시민이 이용하는 버스를 자율주행차로 운행하는 건 세계 최초다. 운전석에는 ‘시험 운전자’가 탑승해 운행을 지원, 점검하고 있다.

승객을 태운 A21번 버스는 서울의 밤거리를 조심스럽게 달렸다. 30∼40㎞/h 속도를 유지하며 서행하던 버스는 신호에 걸리거나 정거장에 멈출 때 급정거하며 아직은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한 번 멈출 때 세 번 연달아 급정거하며 꿀렁대기도 했다.

정거장에서 탑승한 승객들은 자율주행버스 내부를 둘러보며 관심을 보였다. 승객들은 “심야 자율버스 타보고 싶었다”며 들뜬 모습을 보이는 한편 자율주행버스가 사람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했다. 

A21번 버스를 처음 탔다는 안강현(24, 남)씨는 “갑자기 버스에 타려고 할 때 손을 흔들면 버스 운전기사가 (알아차리고) 차문을 열어주는데 AI도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멈출 때 울렁울렁하는 게 아직은 완전히 자율주행으로 운행하기에 이르지 않은가 싶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무인으로 운영될 순간이 올 것이다. 그 순간에 ‘버스 운전기사’라는 직업은 소멸할 수도 있다.

서울 동대문역 인근에서 심야 자율주행버스 ‘심야 A21’번이 운행 하고 있다. 심야 A21번은 심야 이동 수요가 많은 합정역~동대문역 구간 중앙버스전용차로 9.8㎞를 평일 오후 11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5시 10분까지 운행한다. (촬영=김민희 기자) ⓒ천지일보 2024.01.01.
서울 동대문역 인근에서 심야 자율주행버스 ‘심야 A21’번이 운행 하고 있다. 심야 A21번은 심야 이동 수요가 많은 합정역~동대문역 구간 중앙버스전용차로 9.8㎞를 평일 오후 11시 30분부터 다음 날 오전 5시 10분까지 운행한다. (촬영=김민희 기자) ⓒ천지일보 2024.01.01.

◆미국의 노사 ‘AI 동맹’, 한국선 먼 얘기

이런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미 구인 플랫폼 레주메빌더(ResumeBuilder)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AI 기술이 노동자를 대체했다고 생각하는 기업인은 37%에 달했다. 또 44%는 AI의 효율화로 올해에 해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답했다.

‘챗GPT’를 개발한 오픈AI가 지난해 중순에 내놓은 노동 영향 전망을 살펴보면, 연구자들은 미국 노동자의 약 80%는 챗GPT 같은 대형언어모델(LLM) 도입으로 인해 직무의 최소 10%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산했다. 나머지 20% 노동자는 노출 정도가 더 심해, 이들 직군은 직무의 최소 50% 이상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했다. 

미국에서 AI가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다는 노동자들의 우려는 크다. 미국노동총연맹(AFL-CIO)은 지난해 8월 자체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70%에 달하는 응답자가 ‘AI가 노동자를 대체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에 미국 노동자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시가총액으로 세계 2위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달 11일(현지시간) AFL-CIO와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AI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열린 대화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MS는 생성형 AI를 단번에 각인시킨 ‘챗GPT’ 개발사 ‘오픈AI’ 대주주이면서, 동시에 이를 활용한 ‘코파일럿’이라는 AI를 탑재한 검색 서비스 ‘빙’을 운영하는 회사다. 또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AFL-CIO는 약 1250만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60개 노동조합으로 구성된 미국 최대의 노조연맹이다.

AI의 대표주자와 미국 최대 노조가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는 점에서 이 ‘AI 동맹’은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에서도 어떤 대비가 있었을까. 아쉽게도 이지현 한국노총 대변인은 그런 시도가 있었는지에 대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대변인은 천지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랑 경영계랑 이렇게 대화하고 이런 분위기도 아니고, 윤석열 정부 들어서 노정관계도 안 좋고 해서 사회적 대화도 (잠시) 중단되기도 하고 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부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초청강연 ‘AI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우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8.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브래드 스미스 마이크로소프트 부회장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초청강연 ‘AI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우리’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4.18.

◆“예고된 일자리 대란, 사회적 대화 절실”

AI로 인한 일자리 대체는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지난해 11월 한국은행이 낸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의사 같은 직업은 AI 노출 지수가 높아 AI에 의한 대체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내용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변호사나 의사, 회계사 등 이른바 고소득을 벌어들이는 직업의 경우 AI의 영향권 밖에 있을 것이란 일반적인 생각과 대조되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특히 직업별 AI 노출지수로 분석한 결과 보수적으로 봐도 국내 일자리 중 341만개(12%)가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은 보고서의 핵심이다. 

이런 ‘일자리 대란’은 노조의 구성원에도 엄청난 변화를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지현 대변인은 “AI 때문만이 아니라 디지털혁명 이런 얘기 나올 때도 (구성원 변화) 얘기가 있었다. 산업 전환 과정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떤 식으로 이제 천천히 받아들일지 이런 것들에 대해 이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거에 동감한다”고 말했다.

다만 AI 시대 변화는 어느 한 조직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 때문에 노조와 기업, 정부가 모두 함께 모여 대비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이 대변인은 “기술 변화에 서서히 대비하고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논의) 하는 것은 정치의 영역”이라며 “기술 발전이 일부 자본가들한테만 이익이 되고 일류 전체한테는 제한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정치의 영역이기 때문에, 좀 머리를 맞대고 같이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 회장은 AI 칩 수요 폭발로 인한 호황을 맞고 있는 미국 기업 엔비디아를 언급하면서 “엔비디아의 경우 AI 반도체로 주가는 물론 엄청난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며 “어떤 특정 기술이 굉장히 발전하면,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과 기업·국가는 일자리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국가 차원에서 빠르게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잘 대처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언이다.

석 회장은 “앞으로는 AI의 활용, 기술 및 제품 개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개인과 기업, 국가의 유·무능 여부가 가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자리 대란을 앞두고 적극적인 직업 전환 교육 필요성도 대두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AI를 관리·감독하고 통제할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고도화된 일자리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직업 훈련 교육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하게 부각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지현 대변인은 “(직업 전환 교육) 얘기는 많이 있었다”면서도 “사실 (지금까지의 직업 전환 교육이) 크게 도움이 많이 되거나 잘 활용되고 있거나 그렇진 않다”며 좀 더 정교한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AI 노출 지수 상위 및 하위 직업. 노출 지수가 높을수록 대체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출처: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No.2023-30 AI와 노동시장 변화) (제작: 윤신우 기자)
AI 노출 지수 상위 및 하위 직업. 노출 지수가 높을수록 대체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출처: 한국은행 BOK 이슈노트 No.2023-30 AI와 노동시장 변화) (제작: 윤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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