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해 3월부터 가동이 중단돼온 러시아 현지 공장을 단돈 1만 루블(약 14만 5000원)에 현지 업체에 매각했다.

2010년 준공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설립과 운영에 모두 1조원 넘게 투자해왔는데 헐값에 판매한 것은 충격적이다. 2년 내 다시 사들일 수 있는 ‘바이백(재구매)’ 옵션이 붙긴 했지만 재매입 시에는 시세로 계산해 지불해야 한다. 러시아 당국의 적극적인 유치 요청을 받아 공장을 세운 현대차로선 뒤통수를 세게 맞은 셈이다.

이번 현대차의 러시아 철수 결정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글로벌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불안정한 현지 상황 속에서도 러시아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며 버텨왔던 현대차는 전쟁 장기화로 인한 누적 손실이 올해 3분기까지 6600억원 규모로 불어나자 결국 공장을 현지 업체에 넘기게 됐다고 한다.

현대차 측은 “전쟁 직후 공장 가동이 멈춰 손실이 누적돼 왔는데 그나마 팔고 나가는 게 다행”이라고 했다. 일본 닛산자동차는 1유로, 프랑스 르노는 2루블에 현지 법인을 매각하고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러시아 공장도 2년째 멈춰 있다.

지난 4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한국과 관계 개선을 위해 “러시아는 준비돼 있다”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의 외화 통제 등으로 영업환경이 점차 악화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따른 국제사회 제재로 러시아에서 자동차 부품 수급이 어려워지자 그해 3월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러시아 공장 가동 중단과 함께 현지 판매량도 크게 줄었다.

해외 수출과 공급망 의존도가 큰 한국은 지정학적 위험이 크다. 당장 눈앞의 수익만 쫓으려 섣불리 투자했다간 잘못될 위험이 높다. 러시아와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는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현지 진출 기업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미중 간 패권 전쟁 속에 수출 통제 같은 유무형의 장벽도 높아졌다. 미국의 대중 첨단기술 장비 반입 금지, 중국의 핵심 광물과 희토류 수출 규제 발표가 경쟁적으로 쏟아져나오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변화하는 국제정세를 살피며 신중한 대외 경영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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