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진화생물학에서는 ‘멈춤 없는 무한경쟁’이 종 자체의 멸종을 불러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생물 진화의 역사에서 가장 덩치가 큰 사슴이었던 큰뿔사슴은 한때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퍼져 살았지만 지금은 멸종되어 화석으로만 남아 있다.

이름 그대로 끝에서 끝사이의 거리가 3.65m, 무게만 40㎏에 달했던 멋지고 거대한 뿔을 달고 다녔던 큰뿔사슴은 그 뿔 때문에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큰 뿔을 선호하는 암컷의 성선택 압력으로 끊임없이 진화적 군비경쟁을 벌인 결과 공멸하고 만 것이다. 큰뿔사슴은 거대하고 기형적인 큰 뿔 때문에 변화하는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뿔 관리에 지나친 에너지가 소모되어 결국 자연적으로 멸종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는 속담처럼 ‘사슴 나고 뿔났지 뿔 나고 사슴 났냐’는 말이 딱 들어맞는 사례다.

그런데 이게 ‘사돈 남 말할 처지’가 아니게 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웃나라의 유명인사나 전문가들도 한마디씩 거들만큼 우리나라의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소멸은 심각한 상황이고 더군다나 이의 직접적인 원인이 바로 출구 없는 ‘무한경쟁’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번식을 위한 무한경쟁이 오히려 종의 절멸을 가져온 큰뿔사슴처럼 아이 놓고 잘 살기 위한 치열한 노력(경쟁)이 오히려 출산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꼴이다. 완벽한 주객전도, 수단과 목적의 전치다.

“돌잔치에서 아이가 걷는지부터 시작해서 학교와 직장까지 계속 비교하잖아요. 그 무한경쟁에 부모로서 참전할 자신이 없어요.” 정부의 무자녀 부부 간담회 현장에서 나온 어느 부부의 목소리다. 자녀를 갖지 않는 이유로 경쟁이 심한 한국사회의 분위기를 이 보다 더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있을까.

‘멈추면 쓰러진다, 제자리에 있고 싶으면 죽을 힘으로 뛰어라’는 붉은 여왕 효과는 노동과 교육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 다방면에서 하나의 기본 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최장의 노동시간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보건사회연구’ 최근호에 따르면 한국은 OECD 회원국들 중 노동 시간과 가족 시간에 대한 주권(선택권) 수준이 가장 낮은 나라로 분석되었다. ‘노동시간은 과도하고 가족 시간이 짧아서 일-생활 균형을 보장하는 수준이 최하이며 일과 가족을 양립하기 어려운 국가’라는 평가다.

그래도 이는 그나마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일자리 즉 ‘고용 불안’ 자체가 출산율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지대하다. 최근 한국은행이 갤럽을 통한 조사에서 미취업보다 취업 청년의 결혼 의향이 높고 취업자 중에서도 비정규직은 오히려 결혼 의향이 미취업 청년보다 낮게 파악된 점이 이를 반증한다.

만일 출산율이 지금 추세대로 지속된다면 2070년에는 98%의 확률로 총인구가 3천만명대로 줄어들고 2050년대에 한국 경제의 실질 추세성장률이 0%를 밑돌 가능성은 6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저출산의 영향으로 인구가 급감하면서 경제도 뒷걸음질치며 마이너스 성장한다는 얘기다.

이런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공동체 내의 극심한 ‘무한경쟁’ 시스템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멈추면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멈춰야 비로소 보인다’는 진리가 사회시스템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이 선행되어야 그 어떤 처방전도 약발을 받을 수 있다.

나라 전체를 ‘아이 낳고 키우기’에 최적화된 사회로 쇄신하는 일대 혁신이 이뤄져야 ‘대한민국 소멸’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다. 실제로 청년고용, 가족예산, 육아휴직 등의 여건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만 개선해도 출산율이 대략 1.6명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붉은 여왕처럼 멈추지 않고 뛰어야만 현상을 유지하는 극심한 경쟁, 양극화의 심화로 인한 상대적 빈곤과 삶의 만족도 저하를 완화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해소하는 것만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인디언에겐 말을 타고 달리다 ‘멈칫’ 말을 세우고 내려 뒤를 돌아보는 오래된 의식이 있다. 발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멈춤의 시간이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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