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흔히 오늘날의 시대를 ‘기후위기의 시대’라고 칭한다. 기후재난을 넘어 기후재앙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기후위기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탄소제로, 탄소중립의 실천이 시대의 요청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 위기의 저변에는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인식의 위기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세계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기존의 사고방식 즉, 근대적 가치관으로는 더 이상 작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역사적 및 철학적 이해가 요청된다. 바로 근대의 인간중심 세계관에서 생태주의 세계관으로의 인식의 전환, 그리고 물질주의 산업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의 생활양식의 전환이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며 흔히 사용하는 ‘환경(environment)’이란 용어는 문자 그대로 한 생명을 둘러싼 조건을 의미하는 말이다. 환경오염이니 환경파괴니 할 때의 환경이란 다름 아닌 ‘인간을 둘러싼 삶의 조건’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런 점에서 ‘환경’이라는 용어는 어찌보면 ‘인간중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생태(eco)’라는 용어에는 모든 생명체와 이를 둘러싼 유기적 관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집’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한 ‘생태’는 집에 사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를 우선한다. 그런 점에서 ‘생태’라는 용어는 인간중심이 아닌 생명중심, 지구중심이라 할 수 있다.

‘환경’이 ‘중심’과 ‘조건’을 중요시한다면, ‘생태’는 ‘관계’와 ‘균형’을 중요시한다. 생태적 사유에는 모든 생명은 서로 수평적이며 상호 의존성에 기반하여 공생·공존한다는 세계관이 깃들어 있다. 따라서 환경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를 근본적이고 본질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맥락에서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삶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생태적 관점에서는 기후위기의 철학적 원인을 과학기술문명의 발전과 이에 대한 맹신 그리고 그와 결합된 자본주의 이윤추구 논리에서 파악하고, 더 근원적으로는 이러한 논리를 합리화하고 그 사상 배경이 되는 인간중심주의 근대 세계관에서 찾고 있다.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인 근대 인간중심주의 가치관에 따르면 인간만이 인식의 주체요, 가치평가의 주체일 뿐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한낱 인식의 대상이요, 가치 평가의 대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존재는 인간에게 인식될 때 그 존재 의미가 있고, 인간이 관심을 갖는 한에서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에 따르면 우주 속에서 오직 인간만이 윤리적으로 관계를 맺는 존재가 되며, 따라서 다른 생명체 내지 자연을 인간의 이익을 위해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가져올 생태적 세계관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관계를 재구성한다. 생태적 세계관에 따르면, 인간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의 번성은 본래의 가치를 지니며, 이 가치들은 자연계가 인간의 목적을 위해 얼마나 유용한가 하는 문제와는 독립해 있다. 또한 생명체의 풍부함과 다양성은 이러한 가치의 실현에 기여하며 또한 그 자체로서 가치를 지닌다.

따라서 인간은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을 제외하고는 생명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축소시킬 권리가 없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자연을 통일된 전체로 보고, 인간의 행위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도 인간의 이해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국한하지 않고, 자연 전체에 어떤 결과를 미치는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에 입각한 생태문명으로의 대전환은 지구 내 모든 생명과 환경과의 유기적인 관계를 중시하고, 공생과 공존을 우선하며 인류사회 역시 경쟁과 배제에서 벗어나 협력하고 공유함으로써 적절한 물질적 수준과 최고의 정신적 수준을 가진 문명을 만들자는 인식의 혁명이다.

기후변화나 환경파괴, 종 다양성 보존의 문제와 함께 인간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 지구 전체의 생물종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양식을 아우르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명중심주의’ 또는 ‘지구중심주의’적인 생활양식이다.

생태문명 전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유토피아적인 관념인 것 같지만 인류가 반드시 추구해야할 길임에 틀림없다. 밝아오는 새해는 생태적 사유에 바탕에 둔 생태문명 대전환의 한 해가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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