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2000년에 나온 영화 ‘반칙왕’은 송강호가 주인공이다. 상사한테 만날 구박 당하고 짝사랑하는 여자는 반응이 없고,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는, 따분하고 지리멸렬한 삶을 살고 있는 은행원 역할이다. 그에게 우연히 일상 탈출의 기회가 찾아온다. 프로레슬링 선수가 되는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 삶에 활력을 주지만,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가면을 쓰고 반칙의 기술을 익힌 남자는 상대에게 져주기로 약속하고 링에 오른다. 하지만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지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결국 KO 패당하고 말지만, 해피엔딩이다. 시종 눈앞에 펼쳐지는 진기하고 박진감 넘치는 레슬링 동작과 기술들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긴다. 보통 사람들에게, 영화 속 남자는 위안과 카타르시스다.

관객들은 영화 속 남자가 반칙을 일삼지만, 결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의 반칙은 삶을 은유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며 일상의 고단함을 날려버리는 청량제다. 반칙을 그렇게 대놓고 하는데도, 재미있다며 박수를 보낸다. 우스꽝스럽고 현란한 반칙의 열전을 보고 나면, 왠지 모르게 살아갈 힘이 생긴다. 보통 사람들 사는 게 대개 그러하다.

얼마 전 ‘난다 긴다’ 하는 인간들 몇이 모여 북 콘서트라는 걸 했다. 요즘 선거철을 앞두고 게나 고둥이나 출판기념회를 연다. 책 같지도 않은 책을 내고선, 사람들 모아 판을 벌이고 돈을 끌어모은다. 북 콘서트라는 그럴듯한 이름 아래 몇몇이 앉아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해 대며 저들끼리 히죽거린다. 덜떨어진 아이들 함께 모여 서로 격려하고 위안 주고받는 것처럼, 어른이라는 자들이 그렇게 놀고 앉아 있다.

이 자리에서 정치인의 거짓말이 헛발질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축구도 열심히 하다 보면 헛발질이 나오는 것처럼, 정치하는 인간이 막 질러놓은 거짓말들 역시 열심히 하다 나온 헛발질이라는 것이다. 손흥민도 헛발질을 한다며, 무슨 대단한 유머라도 한 듯 저들끼리 낄낄 웃으며 박수를 쳐댔다.

왜 손흥민을 거기다 끌어들이는지,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손흥민이 헛발질을 할 때도 있다. 월드 클래스도 실수한다. 메시도 호나우두도, 펠레도 차범근도 헛발질 한 적 있고 지금도 한다. 그들의 헛발질은 그러나 칭찬받고 격려 받아야 할 아름다운 동작이다. 정당한 플레이다. 그러나 정치하는 것들의 거짓과 날조, 위선은 차원이 다르다.

축구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는 규칙이라는 게 있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즉 반칙이 정해져 있다. 그걸 모르면 선수도 아니다.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반칙을 할 때도 있다. 그 역시 용인된 범위 안에서 가능하다. 반칙도 하나의 전술로 인정받는 것도 그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다.

하지만 정치하는 인간들이 내지르는 거짓말은 저열하고 수준 낮은 반칙이다. 비난 받아 마땅한 혐오의 대상이고, 당장 쓸어내 버려야 할 쓰레기다. 좋은 대학 나오고 고시 패스까지 했다는 인간들이 쓰레기인지, 시래기인지 구분도 못한다. 되레 “나 잘 하고 있지?” 하며 저들끼리 박수치고 희희낙락한다. 후원금 많이 들어왔다며 자랑도 한다. 가련하다고 해야 할지, 우습다고 해야 할지, 참으로 꼴불견이다.

스포츠에서 심한 반칙을 하면 경고를 받거나 퇴장 조치 된다. 아예 출장을 못하게 하거나 영구히 선수 자격을 박탈하기도 한다. 룰을 지키고 상대를 존중해 주는 것은 스포츠맨십의 기본이다. 관중들도 과도한 반칙을 일삼는 선수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치하는 인간들이, 손흥민의 헛발질 운운하며 자신들의 비열하고 치졸한 반칙을 정당하다고 우긴다. 저 인간들이, 스포츠의 기본이나 알고 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번지수를 잘 못 짚어도 한참 잘 못 짚었다. 손흥민과 팬들에 대한 모욕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팬들이 들었으면, 기가 찬다 할 것이다.

뭔가 설명을 할 때 은유나 비유를 한다. 알아듣기 쉬우라고, 사물이나 현상 등에 빗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다. 비유나 은유가 제대로 되려면 그 품은 뜻이 명확하고 언어의 향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것이나 막 갖다 붙이는 게 아니다. 죄 없는 수박이 짓밟혀 박살이 나고, 자랑스러운 태극기가 조롱당하는 것은 훌륭한 비유법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축구의 전설로 우뚝 서게 될 손흥민을 정치인의 헛발질에 갖다 대는 것은, 비유도 은유도 아니다. 예의는 더더욱 아니다. ‘테스 형’이 말했다. 너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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