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申東曄, 1930~1969) 시인이 1967년 발표한 ‘껍데기는 가라’는 시다. 시인 신동엽은 요즘 TV에 등장하는 개그맨 출신 방송인 그 신동엽이 아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익숙지 않겠지만, 우리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출한 작가다. 시인의 작품 세계와 생애에 관한 내용이 교과서에 실린 것도 그 때문이다.

시인은 충남 부여 출생으로,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해 등단했다. 고단한 우리 역사와 분단 현실에 관한 서정시와 서사시를 주로 썼다. ‘아사녀(196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79)’ ‘금강(1989)’ 등 참여적 경향의 시들을 묶은 시집을 냈다.

‘껍데기는 가라’는 신동엽 시인의 대표적인 시로 꼽힌다.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이승만 정권에 맞서 국민들이 들고일어났던 4.19 혁명의 순수한 열정과 민주주의 가치, 분단 현실 극복 등을 염원하고 있다. 때문에 주로 운동권이나 소위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는 시다. 민중가수로 알려진 어느 가수가 이 시에 곡을 입혀 발표하면서, 이 시가 반봉건, 반제국주의 사상을 담고 있다며 사뭇 비장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보면, 이 시를 이 편, 저 편 나눠 평가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봉건, 반제국주의, 민주주의, 통일을 외치는 자들 역시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됐다. 여의도에는 가라지들이 가득하다. 알곡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라지’들이 서로를 향해 ‘가라지’라며 삿대질을 하고 욕설을 해댄다. 뭐가 부끄러운지, 뭐가 창피한지 모른다. 죽어라 돈 벌어 꼬박꼬박 세금 내는 국민만 불쌍하다.

‘듣보잡’들이 설쳐대고, ‘철없는 아이들’이 나대고 있다. 악다구니밖에 없다. 논쟁을 하다가 말문이 막히면 “너 몇 살이야? 어디서 반말이야?” 하며 역정을 낸다. 이때부터 대화의 본질은 오간데 없어진다. “젊은 놈이 버르장머리가 없네” “싸가지가 없네” 하면서 버럭 성을 낸다. 상대는 “나이는 거꾸로 드셨느냐, 나잇값 좀 하라”며 눈을 부라린다.

정치하는 자들 하는 짓을 보면 딱 이 판국이다. 정책이나 비전, 국민 살림살이에는 관심이 없다. 어떡하면 꿀 떨어지는 의원 배지를 더 달 수 있을까, 그 생각밖에 없다. 국민 위하겠다며 허리 굽혀 인사하던 자들이 배지를 달고 나면, 에헴 하고 뒷짐을 지고, 헛소리를 해댄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자들이 ‘정치가 후지다’ ‘이놈 저놈’ ‘어린놈’ 해 가며 입 터진 대로 마구 지껄여 댄다. 할 말이 없으니 욕지거리와 말 같지도 않은 말만 쏟아내는 것이다. 저자들이 과연 고시에 패스해 검사가 되고, 판결을 내리고, 변호사로 활동했다는,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인간들이 맞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까까머리 학생일 때 선생님 왈, “공부 잘하고 머리 좋다고 자랑하지 마라. 인간 안 된 놈이 공부 잘하고 머리 좋아봤자 사기꾼밖에 안 된다.” 우리는 머리 좋고 공부는 잘하는데, 결국 사기꾼인 것으로 드러난 자들을 똑똑히 봤고 또 보고 있다.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

껍데기는 가라. 외상값 받겠다는 자는 시장으로 가고, 책방에서 일하는 자는 책 팔고, 감방 가야 할 자는 감방 가면 된다. 근무 중에 코인 투자한 자는 노름판에나 가고, 설치는 암컷 싫다는 자는 수컷만 있는 곳으로 가면 된다.

아무리 어지럽고 정신없는 세상이라도 순리가 있고 사람 사는 도리가 있는 법이다. 각자 있어야 할 자리, 가야 할 자리가 있다.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제발 좀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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