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이런 실없는 소리를 해대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이상하지만, 사람이 개를 먹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던 세상이었다. 요즘은 개가 사람을 물어도 뉴스가 되고, 사람이 개를 먹는다는 것도 뉴스가 된다. 세상이 달라졌다.

아득한 시절부터 개는 가축처럼 길러졌다. 원래 개는 야생에 살다가 인간과 가까워지면서 가축이 됐다. 인간과 더불어 살다 보니 먹을 것도 생기고 잠 잘 곳도 생기고 천적으로부터 보호도 되니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는 걸, 개들이 알게 된 것이다. 인간이 가장 먼저 가축으로 만든 동물이 개이고, 그래서 개는 인간과 가장 정서적으로 교감이 잘 되는 동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를 반려동물로 집안에 들여 키우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은 아니다.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개는 집 밖에서 키우는 동물로 여겼다. 그러다가 아파트 등 주거 환경이 현대화 되고 개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반려견을 키우는 집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요즘은 너, 댓 집 걸러 한 집에 반려견이 있다.

개들이 반려견의 위치에 오르고 식구가 되면서 집안의 서열도 다시 정해졌다. 가부장제의 엄격한 틀 안에서 에헴 하고 위세를 부리던 아버지들의 기가 확 꺾이고, 대신 엄마와 자식들이 더 큰소리를 하는 세상이 됐다. 반려견은 어느 집 할 것 없이 아버지보다 서열이 위다. 아버지는 집안의 서열 제일 아래, 반려견보다 밑이다.

그럼에도 아버지가 일 나갔다가 돌아오면 아무런 사심 없이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 반려견이다. “여보, 잘 다녀오셨어요?” “와, 아빠 오셨다”하고 식구들이 반겨 주는 것은 젊은 시절 아주 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애들 좀 컸다 싶으면, 아버지가 들어오든 말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소 닭 보듯 한다.

그리하여 아버지들이 아침에 쓸쓸하게 집을 나섰다가, 해가 지면 또 외로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간다. 역시나 식구들이 본 둥 만 둥 하지만, 반려견만큼은 꼬리를 흔들며 반겨 준다. 패기가 사라진 대신 눈물이 많아진 아버지는 개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그나마 이 녀석마저 없으면 어찌 살아갈꼬!” 싶어 눈시울이 붉어진다. 위안과 서글픔이 동시에 밀려든다. 그래, 아버지는 또 한 잔 한다. 많이 마시지도 못한다. 여러 잔 하다가는 식구들에게 혼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자중하는 것이 신상에 이롭다.

개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뭐든 한 삼년 정도 하면 눈이 트이고 귀가 뚫린다는 말이다. 삼년을 배워도 깨치지 못하면 개만도 못하다는 소리다. 이것도 옛날이야기다. 요즘 개들은 하도 똑똑해서 삼년까지 갈 것도 없다. 하루 만에 똥오줌 가리고, 무슨 짓을 하면 주인이 좋아하는지 귀신처럼 알아챈다.

개 풀 뜯는 소리라 함은, 개가 풀을 와작 와작 씹어 먹는 소리를 뜻하는 게 아니다. 소나 염소 같은 초식 동물이 풀을 뜯어 먹는다면 옳은 소리지만, 풀을 먹지 않는 개가 풀을 뜯는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소리라는 의미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도 같은 말이다.

예전에 며느리가 시어머니 보는 앞에서 개를 힘껏 걷어차기도 했다. 아무 죄 없는 개는 갑자기 날아든 발길질에 깨갱 하고 놀라 도망친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보란 듯이, 개를 걷어차며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혹독한 시집살이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는 것이다. 그래도 개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곁에 다가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든다. 구박받고 설움 받으면서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개는, 순박하고 뒤끝 없는 친구였다.

하지만, 수많은 개가 여름 복날 저세상으로 떠났다. 주인에게 한없는 애정과 충성심을 보였음에도, 인간을 위한 보신용으로 생을 마감했다. 목에 줄이 감긴 채 나뭇가지에 매달려, 숨을 헐떡이며, 애처롭게 이 세상과 이별을 했다. 지금도 그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들이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그런다지만, 이제는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사람이 먼저라고 하지만, 이건 좀 생각해 볼 일이다. 개들도 인간처럼 슬퍼하고, 고통을 느끼고, 함께 기뻐한다. 인간이 밥 먹듯 하는 배신도 없고,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생긴 모양만 다르지, 인간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보다, 사람과 함께 하는 세상이 더 좋은 세상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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