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2년 전 세상을 떠난 ‘한국의 지성’ 이어령 교수가 남긴 업적 중 하나는 서울 올림픽이었다.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괄 기획하고 지휘했다.

그는 서울올림픽의 당초 구호였던 ‘화합과 전진’ 대신 ‘벽을 넘어서’로 바꾸고, 개·폐막식을 통해 대한민국 문화의 우수성과 역동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당시 88올림픽은 그야말로 지구촌 화합의 축제 마당이었다. 그 전에 치러진 소련의 모스크바올림픽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모두 반쪽짜리 대회였다. 냉전의 여파로 지구촌이 두 진영으로 갈리고 올림픽도 그로 인해 참가국 수가 각각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서울 올림픽은 진영과 이념에 상관없이 모든 국가들이 참가했다. 역대 올림픽 최고 참가국 수를 기록했다.

이어령 장관은 탁월한 식견과 지성으로 이러한 상황과 의미를 행사에 담아냈다. 가장 상징적이었고 이후 역사적인 사건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개막식의 굴렁쇠 퍼포먼스였다.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선수단이 빠져나가고 시끌벅적했던 공연이 끝나자 경기장은 일시적으로 침묵이 흘렀다. 설렘과 불안한 기운으로 적막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관중들은 숨을 죽이며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이 텅 빈 운동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의 개최지 선정을 선언한 그날, 태어난 아이였다. 일곱 살 천진무구한 아이는,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 가운데를 질러 나갔다. 운동장 가운데 서서 굴렁쇠를 어깨를 멘 채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다시 굴렁쇠를 굴려 나아갔다.

아름다운 충격이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파격적인 퍼포먼스였을 뿐 아니라 누구도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다. 굴렁쇠는 하나의 지구, 하나의 마음, 하나의 염원이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한국 아이들의 모습은 오간데 없었다. 순수하고 꿈 많은 아이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롭게 굴렁쇠를 굴리며 나아가는 모습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일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효과음도 안무도, 기발한 무대 장치 하나 없이, 심연의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어린 물고기처럼, 소년은 굴렁쇠를 굴렸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킨 듯 적막하고 고요했던 것은, 전쟁과 대립으로 싸우고 들볶으며 죽고 죽이는 야만의 시대에 대립하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무심한 듯 굴러가는 굴렁쇠는 새하얀 여백을 가로지르는 붓처럼 선명하고 아름다웠다. 동양의 아름다움이었고,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암시하는, 한 줄의 시였다.

이어령 교수는 후에 인터뷰를 통해 “왜 문학 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는데, 원고지에 쓰던 것을 잠실 주경기장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16년 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회식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스타디움 바닥을 물로 가득 채워 에게해(海)를 상징하자, 소년이 홀로 큰 종이배를 타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갔다. 당시 개회식과 폐회식 총감독이었던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는 후에 “서울 올림픽의 굴렁쇠 소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품격 있는 한류 문화가 그렇게 시작됐다.

월드컵 등 축구 경기장에서도 아이들이 등장한다. 플레이어 에스코트라고 해서, 선수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한다. 아이들처럼 순수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공정하게 경기를 펼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FIFA가 공식적으로 도입했고, 요즘은 어느 축구장에서도 볼 수 있는 흐뭇한 풍경이 되었다.

아이들을 내세울 때는 이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시위 현장에 데려와 방패막이로 삼거나 몹쓸 짓을 하는 데 이용해서도 안 된다. 죄를 저질러 경찰에 불려나가면서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몹쓸 짓이다.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기심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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