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환경부가 지난 7일 규제 합리화란 명분으로 일회용품 품목별 규제를 풀고 ‘과태료 부과’에서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는 지원 정책’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식당이나 카페, 편의점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비닐봉지 등 주요 일회용품 사용을 더 이상 정부가 강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정은 환경 포기 선언이나 다름없다. 말이 좋아 자발적 참여를 통한 감축이지 사실상 기존의 일회용품 규제 정책을 폐기한 꼴로 한마디로 정부가 매장의 일회용품 사용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식당, 카페 등 자영업자들의 편리와 효율을 이유로 일회용품 사용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간 환경을 생각해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해온 국민들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환경 규제를 강화하는 국제 흐름과도 배치되는 명백한 반(反)환경적 정책이며 탄소제로 사회를 지향하는 시대적 흐름에도 역행하는 방향이다.

이명박 정부 때도 종이컵은 재활용이 가능하고, 해당 규제로 인해 국민 생활의 불편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금지 품목에서 제외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후 종이컵 사용이 급증했고 5년 새 일회용컵이 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규제완화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결국 환경부는 2019년 시행규칙을 개정해 종이컵의 사용을 줄이기 위한 제도를 마련한 바가 있다. 그렇게 진행되던 정책을 현 정부가 느닷없이 일관성을 깨고 다시 폐기한 셈이다. 원전과 4대강에 이어 생활 속 환경정책 마저 MB를 답습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안하겠다는 것은 직무 유기에 다름 아니다. 일회용품 규제의 핵심은 한 번 사용하고 버려지는 것을 막는 데에 있다. 2019년 기준 일회용 종이컵 사용량은 연간 248억개나 된다. 2020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포장재 소비량은67.4㎏으로 세계 2위 수준이다. 규제를 대폭 강화해도 부족할 판에 환경부가 앞장서 기존 규제마저 없애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일회용품 규제 철폐는 국민들의 일회용품 저감 의지와도 명백히 배치된다. 지난해 환경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97.7%가 ‘일회용품 사용량 절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2021년 8월 국민권익위 설문조사에서도 ‘일회용품 사용규제 강화 필요성이 있다’는 응답이 83%에 달했다.

실제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 규제의 효과도 명확하다. 환경부의 자료에 의거 연도별 개인텀블러 및 다회용컵 사용 비율은 2018년 44.3%에 불과했지만 규제를 본격화한 2019년에는 93.9%까지 급증했다. 이는 2018년 8월부터 매장내 일회용컵 사용 규제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개인의 실천과 카페의 선택이라는 자율 감량보다 사용 규제라는 제도가 일회용품 사용 저감에 더 큰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일회용 비닐봉투 또한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환경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형마트, 제과점 비닐봉투·쇼핑백 사용량이 2017년 3810톤에서 2022년 660톤으로 크게 줄었다. 이 또한 2019년 1월 1일부터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금지를 위한 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규제 완화의 근거로 생분해 비닐 사용 비율이 높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생분해든 종이든 한 번 사용하고 폐기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일회용품 규제의 핵심이다. 어차피 종량제봉투에 버려 소각해야 하는 생분해 포장재가 일회용품의 대체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플라스틱 빨대는 또 어떤가. 소비자가 종이 빨대를 불편해하고, 사업장은 비싼 종이 빨대를 구비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보다 플라스틱의 심각한 환경오염이 더욱 큰 문제 아니던가.

플라스틱은 90% 이상이 화석연료로 만들어진다. 화석연료에 기댈 수밖에 없는 플라스틱 생산이 기후위기의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현재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국제 협약을 논의 중에 있고, 이미 유럽연합은 2021년 7월부터 회원국 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고 있기도 하다.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소상공인·자영업자 표심을 잡기 위한 선심정책의 일환으로 일회용품 규제 폐지라는 카드를 뽑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아무리 선거가 중요해도 어디 포기할 게 따로 있지 미래를 담보로 해서야 되겠는가.

지금이라도 정부는 산업계의 입장만 대변하고, 정작 일회용품 사용 규제에 가장 밀접한 현장에 있는 국민, 소비자의 의견은 전혀 수렴하지 않은 반환경적 결정을 철회하고 환경정책 실종을 우려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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