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생존본능과 번식본능 무엇이 더 근본적이고 우위에 있을까? 현상적으로만 보면 생존이 번식에 우선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 출산을 포기하는 것도 생존이 불안해서 번식을 포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번식보다는 생존이 먼저이지 않을까?

허나 그렇지 않다. 번식이 생존에 우선한다. 진화생물학적 관점으로 볼 때 생존은 번식의 이유이고 과정이다. 생존의 목적은 번식에 있고 번식의 이유는 생존에 있지만 여기서 유념할 점은 생명의 단위를 개체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유전자적 관점과 집단적 관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생물학에서 생명이라 함은 생명체 하나의 개체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가는 연속성까지 함의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번식을 말할 때는 항상 양육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생물이 살아가는 서식지, 서식환경의 열악함이란 생존환경의 열악함인 동시에 번식환경의 열악함을 뜻한다. 짝짓기를 통한 번식과 양육의 조건이 선택압이 돼 생명체의 삶과 진화의 추진력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종이 아이를 낳지 않은 행동 역시 현상적으로는 열악한 생존환경 탓, ‘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자식은 무슨’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아이를 낳고 기르기 힘든’ 서식환경의 척박함 탓이며 비혼 또한 같은 원인에 있다고 봐야 한다. 번식 욕망은 강렬하지만 열악한 서식환경 탓에 번식을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반생물적 행위가 확산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이 낳고 기르기 힘든 척박한 삶의 조건 즉, 번식과 양육이 불안하거나 불가능한 서식지 환경이 생명의 기본 목적이자 존재 이유인 번식 욕망을 억제하고 반생물적 행동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생태계에는 개체의 생존보다 번식에 더 우위를 두는 본능적 행동 사례들이 무수히 많다. 가장 많이 알려진 사례가 바로 ‘수컷 카니발리즘’으로 유명한 사마귀의 짝짓기다. 수컷은 짝짓기 도중 암컷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피하려고 번식을 포기하는 법은 없다.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역시 산란 후 삶을 마치게 된다.

짝짓기 중의 동종포식은 엽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번식전략의 일환이다. 이는 수컷이 암컷을 잡아먹는 동종포식의 형태는 자연생태계 어디에도 없음에서 알 수 있다. 수컷이든 암컷이든 생존시계는 짝짓기 즉 번식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2만여㎞에 달하는 험난한 대장정을 거쳐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 역시 생의 하이라이트는 번식이다. 연어의 짝짓기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의식이다. 번식을 마치면 죽음을 맞이한다. 번식환경에 따라 번식 전략이 바뀌는 경우나 번식환경에 맞춘 번식 전략의 사례도 무수히 발견된다. 부성애로 이름 높은 물고기인 가시고기 수컷은 부화한 새끼를 위해 제 살점을 먹인다. 사회성 곤충인 수벌은 여왕벌과의 결혼비행에서 생식기가 끊어져 죽는다. 매미 역시 땅속에서 오랜 애벌레 기간을 견디다 성충이 되자마자 짝짓기를 하고 죽는다.

식물 또한 다르지 않다. 산에 자라는 대나무라 하여 일명 ‘산죽’이라 부르는 조릿대는 야생에서는 흔히 20년을 살고, 평생에 한 번만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그래서 조릿대는 종족보존을 위해 단 한 번의 개화와 결실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그 이후에는 땅속 에너지가 고갈돼 개체군의 약 60~70%가 사멸한다고 한다.

이렇듯 자연생태계에서는 모든 생존시계가 번식에 맞춰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짝짓기 전략과 번식 행동을 살펴보면 번식이 개체 생존의 목적이라는 사실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람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출산율을 높이는 근본적인 방도는 열악한 번식환경의 개선과 안정화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물론 개체의 안정적인 생존환경이 번식률을 높이는 데 기여하겠지만 이는 생존환경이 통상 번식환경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고 방점은 출산과 육아 그리고 양육에 대한 번식환경의 안정화에 둬야 한다.

비록 개인의 생존환경이 척박한 경우라 하더라도 국가나 사회, 공동체가 출산과 양육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놓는다면 적어도 출산과 양육에 대한 불안은 없을 테고 지금과 같은 퇴행적, 반생명적 출산 포기 현상은 줄어들거나 사라질 것이다.

‘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데는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인류공동체의 정치사회적 테제일 뿐 아니라 진화생물학적으로도 인간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탁월한 번식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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