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한국의 교통 정책 우선순위는 변함없이 승용차-대중교통-도보 순이다. 아직도 경제성장을 철칙으로 삼고 있기에 사람보다 자동차가 중심이다. 빠르고, 신속한 효율성이 일상에서 최고의 가치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성취를 넘어 기후 정의와 문명 전환을 선도해야 할 세계적 위상에 비하면 창피한 일이다. 한국은 이제 서구문화의 수신처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시대전환의 문화 가치를 전파할 발신지 아닌가.

10년 넘게 살고 있는 인천 영종도의 통행료 문제를 살펴보다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10월 1일부터 ‘돈 먹는 하마’로 지탄받던 민자고속도로인 인천국제공항 연결 교량(영종대교와 인천대교)의 통행료 감면 및 주민 무료통행이 시행되자 영종지역에서 난리다. 통행료 감면 및 무료화로 인해 이산화탄소 발생 주범인 차량 운행 증가가 뻔한 상황을 너나없이 반길 일인가?

얼마 전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4㎞가량 거리의 인천 영종씨사이드파크에 가 보았다. 영종대교와 인천대교 통행료 인하 및 감면을 축하하는 제23회 ‘영종 주민의 날’이 어찌 진행되는지 궁금했다. 대통령 영상 축사가 이어지고 국토교통부장관, 인천시장, 지역 국회의원, 인천공항공사 사장, 구청장 등 거물들이 참석했다.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공공의 선투자로 일반 고속도로 요금보다 2배 이상 비싼 통행료를 반값으로 인하하고, 영종 주민들의 무료 이동이 가능해졌다. 시민과의 약속을 이행했다”고 말했다.

인천국제공항 개항 직후 시작된 주민 통행료 운동이 23년간 꾸준히 이어진 덕분에 이런 결실을 거둔 게 사실이다. 영종도에 사는 주민들은 집에 드나들기 위해 비싼 통행료를 내는 현실에 분개해 국민 이동자유권 보장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냈다. 도보나 자전거 통행을 금지한 고속도로 교량을 해외자본 유치를 통해 건설했기에 통행료가 일반도로에 비해 2~3배 높았다. 주민들은 2003년부터 10원짜리 동전이나 고액권으로 통행료를 내는 준법 투쟁에 나섰고, 20년 동안 대규모 차량시위를 8번이나 벌였다. 이 과정에서 주민운동을 주도한 공기업 직원이 해고됐고 몇몇 주민들이 불법 시위 혐의로 형사 처분을 받았다.

올해 3.1 독립운동 104주년을 맞아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1000여 대의 차량을 몰고 경적을 올리는 준법 차량시위에 또 나서려 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한국도로공사, 민간기업이 수도권 국민을 위한 접점을 조속히 강구하라”며 영종도 통행료 인하 및 주민 무료통행 약속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결국 국토교통부와 인천시가 ‘인천·영종대교 통행료 인하 추진안’을 발표했고,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도로공사의 공공자금으로 민간 투자자에게 교량 건설비를 우선 보전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회기반시설인 고속도로를 민간투자에 의존하면서 전례 없이 과다한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란 특혜가 주어졌다. 잘못 끼운 첫 단추로 인해 과다한 통행료가 책정됐고, 그로 인한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했던 것이다. 20년 넘게 재정 부족을 이유로 방관했던 이런 정책 오류의 씨앗을 정부 스스로 거둬들인 셈이다.

통행료 정상화는 당연한 일인데도 정부나 행정가, 정치인들이 ‘통 큰 결단’ ‘협력 축하’와 같은 ‘셀프 칭찬’을 너무 남발하는 것 같다. 영종도의 지역 가치를 안다면 사람과 생태 중심의 글로벌 미래 전략 청사진을 제시할 시점이다. 2000년대 초 김대중 정부 말기에 영종도를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 전략의 핵심 거점으로 삼으려 한 바 있다.

여러 섬과 갯벌, 바다를 두루 갖춘 영종도는 DJ 구상을 기후위기 상황에 맞게 재설계할 수 있는 곳이다. 영종도와 용유도, 무의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해안 자전거길이 갖춰져 있어 자전거 라이딩 성지로 통한다. SNS에서 구읍뱃터~씨사이드파크~잠진도선착장~마시안해변~선녀바위해수욕장~을왕리해변~삼목여객터미널 40~50㎞ 구간을 당일치기로 일주한 라이더들의 사진과 기록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곳곳에 나무보다 탄소흡입 효과가 뛰어난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유엔 세계유산위원회는 강화~영종~송도지역 갯벌을 2026년까지 세계자연유산으로 추가 등재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세계적 허브공항과 다양한 생태문화자원을 갖춘 영종도 같은 지역에서부터 자동차보다 사람, 자전거 중심의 문명 전환 기획이 야심차게 추진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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