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서울이 뜨고 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서울 일극체제를 극복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서울 블랙홀’은 더 강력해지고 있다. 한류문화의 역동성, 창의성이 살아 숨 쉬는 한남동, 성수동, 압구정동, 연남동, 익선동과 같은 아기자기한 서울 뒷골목이 MZ세대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를 끈다.

디오르, 루이뷔통, 구찌 등 명품 패션브랜드들이 서울 명소에서 앞다퉈 런웨이를 여는가 하면 한식 체험, K-POP 댄스 배우기, 아티스트 공연 관람을 기본으로 삼는 해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1인당 10만 달러(약 1억 2700만원)짜리 여행상품을 선택한 해외 럭셔리 관광객들이 서울을 필수 방문지로 삼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가 여행사를 통해 단체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주류였던 여행 트렌드가 질적 전환을 하고 있다.

서울이 뉴욕 파리 런던 도쿄 싱가포르 같은 매력적인 글로벌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이제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각 분야를 망라한 자원들이 차고 넘친다. 그릇에 너무 많이 담으면 넘쳐흐르고, 차오른 달은 기우는 게 세상 이치다. 서울은 만족할 줄 모르고 더욱 비대해지려 안달이다. 초연결사회로 진입했는데도 물리적 공간 확장에 집착하는 게 참으로 이상하다.

최근 김포시가 촉발하고 국민의힘이 당론화한 ‘김포시의 서울 편입론’은 멈추지 않는 욕망의 기관차를 보는 것 같다. 서울시와 김포시가 ‘김포시 서울 편입 공동연구반’을 만들기로 한 이후 하남 과천 광명 부천 고양 구리 등지에서도 서울 공간 확장을 둘러싼 논란과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서울 확장과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상존할 수 있는 것인가. ‘대 서울론’의 기원은 황석영의 장편소설 ‘강남몽’에 잘 그려져 있다. 1966년 여름 서울시의 ‘대서울백서’ 발표 전후로 부동산 투기 열풍이 몰아친다. 남한 정부 수립 직후 실시된 농지 개혁으로 도래했던 ‘평등 지권’이 붕괴되고 토지와 부동산을 부의 축적 도구로 떠받드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1950년대 150만명이었던 서울 인구가 350만명으로 급증하면서 인도교, 광진교 2개 한강 다리에 이어 세 번째인 제3한강교를 착공할 즈음이다. 소설에선 서울 변두리 말죽거리에 투기 바람이 불어 평당 200~300원 하던 땅값이 1년 사이 10배 이상 뛰면서 눈이 뒤집힌 투기꾼들의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다. 설상가상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강남 개발이 이어지면서 사람들이 투기 광풍으로 빠져든다.

경제개발을 본격화한 1960년대 중반부터 ‘부동산 공화국’의 징조는 확실했던 것이다.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의 영향력을 간파한 ‘부동산 선구자’들이 졸부로 성공한 산업화의 그늘이 시장과 자본주의를 왜곡시키는 단초를 제공한 게 아닌가 싶다. 한강 연안 공유수면 매립과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상징되는 강남 개발은 지가 폭등을 불러왔다. 서울 빈민들을 광주와 성남으로 밀어내고 경계가 외곽으로 번지는 도시 스프롤 현상은 가속화된다.

서울 인구가 1992년 1097만명으로 정점을 찍고 난 이래 현재 940만명까지 줄어든 반면 경기도는 1300만명대로 늘어났다. 대북 접경지역이 많은 경기도의 남북 간 지역 격차를 줄이고 적정 인구수용을 위해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가 추진되는 가운데 느닷없이 서울 확장론이 튀어나왔다. 경기도는 “애초 북부특별자치도 편입 대상에 김포시를 포함시킨 바 없다”고 밝혔는데도 김포시는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보다 서울 편입이 유리하다”는 억지 논리를 편다. 이러자 김포에서 군수, 시장, 국회의원을 지낸 유정복 인천시장은 여권 인사임에도 김포의 서울 편입에 대해 “정치쇼를 중단하라”고 쓴소리를 했다.

행정구역 개편안을 선거용 정략 구호나 대중 영합의 포퓰리즘 소재로 삼았다간 역풍을 맞기 십상이다. 시대 변화에 따라 서울과 수도권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겠지만, 지역 특성과 장점을 더욱 잘 발현시키는 연장선상에서 숙의와 공론의 과정을 거치는 게 우선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이 500년 전에 외친 마키아벨리의 고언에 귀 기울이면 좋겠다. 그는 ‘로마사 논고’에서 “대중은 군주보다도 훨씬 은의에 돈독하고, 총명함과 부동심에 대해서도 군주보다 훨씬 신중하며, 변덕도 적고 정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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