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새만금 잼버리(Jamboree, 유쾌한 잔치)가 막을 내리고 4만명의 스카우트 대원들이 각자 제 나라로 돌아갔으나 후폭풍이 거세다.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국제적 망신보다 더 심각한 매립지의 비극을 보여줬다.

국제행사를 미끼로 새만금 갯벌을 매립해 야영지로 꾸며놓고도 뻔히 예상되는 폭염엔 속수무책이었다. 매립지의 배수되지 않는 땅은 모기와 화상벌레들의 서식지로 돌변했음에도 해충 방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기후 온난화로 더 뜨거워진 뙤약볕을 피할 그늘은 광활한 매립지엔 없고 화장실, 목욕시설은 엉망이었다.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대원들을 폭염 생지옥으로 몰아넣은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은 너무도 한심해 더 할 말이 없다.

이런 파행 운영과 무능 행정에 대한 원인 규명이 논의되는 때에 잼버리 행사장 주변의 새만금국제공항 건설 진행 소식이 더 충격적이다. 조달청 공개입찰에 국내 굴지의 3개 컨소시엄이 참여했고, 전북지역 건설사와 의무적으로 20% 공동 도급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다. 정부 예산 5000억원을 투입해 새만금 간척지에 활주로, 계류장, 관제탑을 조성할 적격 건설업체를 다음 달까지 결정한다는 것이다.

국제행사 실패로 새만금신공항 백지화 논의가 불거지는 마당에 정치권과 지자체는 지역표만 의식한 대형 개발사업을 천연덕스럽게 밀어붙이고 있다. 잼버리가 던져준 교훈을 전혀 되새겨보지 않고 갯벌을 변함없이 개발공간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새만금신공항 사업은 잼버리 개최를 명분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았다. 잼버리 대원들의 여객기 이동을 위해 공항을 먼저 완공하기로 했는데, 잼버리는 이미 끝났다.

인근 무안공항도 적자에 허덕이는 가운데 새만금의 항공 수요나 경제적 타당성이 턱없이 낮은 상황을 감안한다면 어느 누가 신공항 건설을 수긍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잼버리가 지역 개발의 도구로 이용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공항 외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새만금 신항만을 건설하려 한다. 잼버리 행사장 조성을 위해 관광레저용지를 농업용지로 전환해준 뒤 농지관리기금 2150억원을 쓸 수 있도록 편법 특혜도 부여했다.

개발의 덫에 갇힌 새만금 갯벌의 숙명이 너무도 처량하다. 정부가 얼마 전 한국 관광 홍보를 위해 만든 갯벌 동영상 ‘머드 맥스’와 대조적이다. 영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패러디해 충남 서산시 대산읍 오지리 갯벌을 질주하는 수십대의 경운기 행렬은 흥겹기 그지없다. 호미, 바구니를 든 어촌계 주민들은 바닷물이 밀려들기 전 경운기를 타고 갯벌로 출동해 바지락, 굴, 논게를 캔다. 전통 민요와 힙합을 배경 음악으로 깔고 경운기엔 만선을 알리는 깃발이 펄럭인다.

서산 갯벌과 가까운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 주민들도 경운기 부대를 이끌고 갯벌로 나가 게르마늄 모래를 뿌린 명품 바지락 조개를 한 가구당 하루 50㎏만 수확하고 있다. 속이 차고 알이 쫄깃한 이곳 조개는 어민들의 삶을 풍족하게 해 주는 금싸라기 같은 존재다.

갯벌은 어민 삶의 터전이면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구원자다. 2021년 7월 한반도 서남해안의 갯벌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다. 새만금이 있는 전북 고창과 충남 서천, 전남 신안과 순천‧보성 갯벌은 해조류, 규조류, 멸종위기종 철새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종 다양성을 보유한 서식지로 인정됐다. 생물 종 다양성이 북유럽 와덴해 갯벌 450종인 데 반해 서해안 갯벌 700종으로 조사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2026년까지 인천의 강화~영종~송도, 경기 화성, 충남 아산까지 세계자연유산 갯벌을 확대하라고 권고한 상태다. 국제적 약속을 지키기 위해선 갯벌을 소중히 아끼는 정책과 문화가 우선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갯벌이 지닌 블루카본에서 기후위기 탈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주목해야 한다. 갯벌과 조개, 미세 규조류가 육지의 나무, 풀보다 탄소를 더 많이 흡수‧저장한다는 것이다. 그린란드 빙하, 아마존 우림지대 소멸이 빨라지는 상황에서 탄소 중립에 큰 역할을 하는 바다와 갯벌이 중요시되고 있다. 자연 해안선 보호를 위해 미국은 연안정비습지를 꾸준히 조성하고 있으며 호주, 이스라엘, 홍콩에선 에코쇼어라인을 설정하고 있다.

잼버리 실패를 계기로 갯벌이 개발의 공간이 아닌 생명의 거처로 대우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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