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초저출산국가로 진입한 한국에서 10, 20대 잘파세대의 위력은 막강하다. 미래를 열어갈 소중한 존재인 데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키즈’로 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와 2010년 이후 탄생한 알파 세대를 통칭해 잘파세대로 부른다. 이들은 유년기부터 스마트폰, 태블릿과 친숙히 지낸 ‘디지털 네이티브’다.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스마트 기기를 척척 다루는 유아들을 흔히 본다. 알파세대가 태어나 처음 말한 단어가 ‘엄마’가 아니라 아마존의 AI 비서 ‘알렉사’라고 하지 않던가.

개인 각자 소셜미디어 환경을 형성하고, 대중문화 인플루언스로 쉽게 등극한다. 호주 리서치기업 매크린들연구소가 10여년 전 전례 없는 신인류인 이들에게 그리스 문자의 첫 글자를 따 ‘알파(α)’세대라고 호칭했다. 알파세대 부모는 개인의 취향과 취미를 중시하는 밀레니얼세대다. 밀레니얼 부모는 취향과 브랜드에 민감하고, 대개 한 자녀 가정을 일구고 있다.

밀레니얼 가정, 1인 가구가 60~70% 차지하는 세태 속에서 도시의 풍경과 정취는 급격히 변모하고 있다. 얼마 전 부산 영도 ‘깡깡이마을’의 양다방에서 레트로 풍 감성을 찾아다니는 MZ세대들과 마주쳤다. 옛 건물이 즐비한 영도의 깡깡이마을, 흰여울마을을 찾는 20~40대 젊은 층이 꽤 많았다. 7080세대에겐 너무도 익숙한 동네이기에 청년들과 자연스럽게 세대 소통이 이뤄지는 장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문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해오며 ‘영도의 힘’을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 골목길을 찬찬히 걸어 다녔다.

드라마 ‘무빙’과 ‘라이프 온 마스’ 촬영장소였던 양다방은 ‘옛스런’ 간판과 건물을 유지하고 있는 찻집이다. 입구 벽면에 드라마 촬영 포스터 몇 장이 붙어 있었다. 실내 곳곳은 30~50년 전 생활용품으로 단장돼 있고, 탁자 위 비닐 코팅한 A4 용지 한 장에 양다방의 내력을 알려주는 글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영도구 문화관광자문위원 A씨가 작성한 ‘양다방 스토리텔링’ 안내판이다. 일제강점기 1910년대 바다 매립으로 형성된 양다방 위치(대평동)를 시작으로 해방기~한국전쟁~산업화 시기의 동네 역사를 서술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원양 어선 선주들이 선원 구할 때 제일 먼저 찾는 곳이 양다방이었고, 선원들도 승선할 자리를 양다방 마담에게 문의했다. 조선소 사장님들이 수주받는 공간까지, 해양과 수산 관련 일들이 이곳에서 이뤄졌으니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이자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일본인, 피난민, 주한 미군, 조선업과 원양어선 종사자들의 발자취가 서린 동네에서 양다방은 1968년부터 지금까지 같은 이름으로 유지되고 있다. 개업 당시의 모습은 거의 변함없다. 주변 다른 상점이나 요양원으로 들어간 노인들이 떠나면서 맡겨둔 물품들을 다방 내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골동품 같은 전화기, 전축, 레코드판, 도자기, 그림들을 투박한 형태로 전시해놓아 옛 향수를 자극한다.

30년 넘게 양다방을 운영하는 여주인은 “청소년들이 드라마 보고 찾아와 커피 대신 쌍화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고 말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온 젊은 관광객 발길도 잦다고 한다. 양다방이 도시를 기억하며,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탈로 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란 소설에서 “도시의 과거는 마치 손에 그어진 손금들처럼 거리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 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다”고 표현했다.

영도의 과거를 간직한 공간이 양다방 외에도 꽤 많았다. 과거의 흔적과 기억이 담긴 이런 공간과 장소들이 취향, 성향 차이가 큰 세대들을 연결해주는 다리 같았다. 조선 수리소에서 버려진 선박 부품을 활용한 거리 의자, 목조주택 철거 때 수거한 대들보 상량문을 모아둔 쌈지공원, 바람 파도 빛을 형상화한 공공예술 조각품 등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었다. 남항동 노을길 안심마을의 비좁은 골목 바닥을 길잡이용 표지선으로 수놓았고, 담장엔 벽화가 드문드문 그려져 있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처럼 짧고, 쉽고, 가벼운 장르나 콘텐츠에 친숙한 잘파세대들이 얼마나 영도 매력에 빠져들지 잘 모르겠다. 깡깡이마을, 흰여울마을에서 현지인 삶을 기반으로 세대 소통을 이뤄가는 장소로 탈바꿈하려는 변화의 몸짓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함께 운영하던 다방과 찻집들이 다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양다방이 앞으로도 ‘핫 플레이스’로서 건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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