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제 언론인

주거 취약계층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전세 사기 피해를 막기 위한 특별법 시행 이후 임차인의 안전장치인 보증보험 가입이 까다로워져 오히려 세입자들을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규정을 충족한 빌라(연립‧다세대)가 전세 거래 총물량 중 절반 수준이다.

모 언론사에서 올해 이뤄진 빌라 전세 거래 2만 7000건을 분석한 결과 46%가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한다. 더욱이 빌라 매매 및 전세가의 동반 하락세 인지라 보증보험 갱신 탈락자들이 더 늘어날 게 뻔하다. 전세 사기 악용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더 현실적이어야 하고, 취약계층의 주거 불안감 해소를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얼마 전 전북 전주시 한 빌라에서 40대 여성이 네 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등졌다. 경찰 조사에서 집세와 전기요금 연체 등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돼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진 양극화와 복지 사각지대 실상이 또 드러났다. 정부가 이런 비극과 전‧월세 피해를 최소화하려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현 금융시스템으로는 역부족이다.

왜 그런가. 자본, 이자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회 속에서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자본의 종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기 때문에 주거환경은 점점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전세 사기 피해대책만 하더라도 진정 서민을 위한 정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보증금 반환 능력이나 의사가 없는 ‘바지 사장’을 내세워 보증보험을 악용하고 있는데도 국가나 보증보험을 발행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과 같은 보증기관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빌라왕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30대 A씨는 특별법 덕분에 주택 구입자금 대출을 기대했지만 업무용 시설인 오피스텔에 살기 때문에 피해자 구제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특별법으로 대출 지원 문턱만 더 높아져 속이 탄다. 그는 2021년 브로커에게 “보증보험을 들어주니 걱정할 것 없다”는 말에 속아 보증금 2억 7400만원을 내고 오피스텔 전세 계약을 했다. 오피스텔 분양가는 2억 7500만원이어서 빌라왕은 바지사장을 내세워 단돈 100만원만 내고 소유할 수 있었다. 세입자 보증금을 이용한 이런 수법으로 신축 오피스텔을 240여채 사들인 빌라왕은 애초 자기 돈으로 주택을 사지 않았으니 보증금을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HUG ‘전세보증보험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이런 식으로 전세 사기 일당이 수많은 빌라 주택을 ‘깡통전세’로 만들어놓고 있지만 보증사고 방지 대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바지사장이 숨지고 보증사고 사실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임차인은 재계약 과정에서 HUG 보증보험 연장도 받지 못하고, 보증금까지 날리게 된다.

200만 호, 300만 호 건설로 전국 주택보급률은 102%를 넘어섰으나 자기 집을 소유한 자가보유율은 54%에 불과하다. 국민 46%의 무주택자에 대한 차등적인 대출금리를 줄이고, 전‧월세 대출부터 이자 상환까지의 부담을 완화해주는 게 주거안정대책의 요체다.

생애 최초로 집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반값 아파트를 공급하고,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80~90%로 대폭 늘려줘도 최소한 집값의 10~20%가 없어 집을 살 수 없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이들에게 전세대출을 해줄 때 신용등급 차별화하는 게 금융 관행이다. 같은 집에 살기 위해 같은 금액의 보증금을 내는데 서로 다른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똑같은 평형의 아파트인데 대기업에 다니는 세입자는 무이자로 전세자금을 지원받고, 중소기업에 다닌다고 4% 이자율로 전세대출하고, 비정규직 세입자는 아예 대출을 못 받는다.

사회적으로 보호해줘야 할 주거 약자에게 더 많은 비용을 부담시키고 있는 불공평하고 부조리한 행태다. 신용등급에 의한 ‘경제적 신분 사회’를 타파할 사회적 금융시스템이 필요한 때다. 국가 책임 아래 세입자가 낸 보증금을 100% 보장해주고, 임차인 누구나 동일한 최저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는 사회적 금융시스템을 강구해야 한다. 그래야 자본과 이자의 차별을 넘어 46% 무주택자들이 주거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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