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님! 사람을 많이 접하는 직업 종사자들이 비교적 여론에 민감하고 상황 판단도 정확한 편이지요. 필자는 지난 주말 이발과 목욕을 하기 위해 동네 목욕탕에 들렀습니다. 집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데 한여름에 누가 사우나를 자주 찾을까요. 목욕탕에 손님이 몇 명 되지 않았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여름날 찾은 목욕탕은 마치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폐허처럼 황량하고 쓸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래갖고서야 보일러 데우는 비용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말입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목욕탕에 온 고객들은 이른바 사우나 마니아라고 해도 되겠지요.

“여권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듬직하고 남자다워 가장 믿음이 갑니다.”

평소에도 자칭 ‘보수’라고 스스로를 분류하며 스스럼없이 필자와 얘기를 나눠온 이용실 사장이 제 머리를 손질하며 말을 건네더군요. 손님이 뜸하다 보니 이 아저씨도 입이 근질근질했을까요. 그러나 듣다 보니 그는 고객들이 전해준 얘기들을 통해 꽤 많은 얘깃거리들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귀엣말로 펼치는 그의 입담에 흥미롭게 귀 기울이던 필자가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손님들이 어떻게 보던가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귀하에 대해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앞으로는 몰라도 아직은 영향력이 크지 않아 보인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그는 이어 “그간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해온 문고리 권력 3인방 등 측근들의 역할에 대해 유 의원이 직언 내지 뒷담화를 하다 보니 그렇게 눈 밖에 난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라며 “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렇다면 야권의 대선주자는 누가 유력할까요” 필자는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쪽은 좀 더 정리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해 한바탕 웃고 말았네요. 여론조사에서 이미 유 전 원내대표는 대선주자군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일부 군소 후보보다 높은 지지율도 얻었으니 하루하루가 다른 상황입니다. 하지만 필자가 동네 이발관에서 나눈 가벼운 대화를 통해 미뤄 짐작건대 귀하는 아직 일반 대중에게는 많이 어필되지 않은 잠룡(潛龍) 중의 잠룡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네요. 어쩌면 시간이 갈수록 국민의 뇌리에서 쉽게 잊혀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정치인은 일약 대권주자로 뜰 수도 있고 혹은 어느 날부터 아스라이 잊혀질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며 그 여인은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이라는 어느 시인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대권주자 반열에 들었다고 속된 말로 우쭐하거나 오버할 필요도 없고 잊혀지고 있다며 주눅이 들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유 전 원내대표님! 귀하에게 쏠린 국민적 관심은 첫째 당태종에게 소매를 걷어붙이고 직언을 아끼지 않은 명신 위징에 대한 그것과 비슷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즉 백성보다는 주군의 입장에서 살피고 자신의 안위만을 우선시하는 간신(奸臣)이나 맹목적이라 할 충신(忠臣)보다는 최고권력자와 맞서 지조와 소신을 굽히지 않는 양신(良臣)의 부류로 평가하는 것이라고 하겠지요. 다만 최측근이나 골수 친박 입장에서는 양신(良臣)이라기보다 오히려 역신(逆臣)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네요. 정확한 평가는 후대의 사가(史家)들이나 내릴 일이겠지만. 둘째는 아무래도 경제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 서민들의 허리가 휠대로 휘고 중산층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와중에 있습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와 가뭄 등으로 삶이 녹록지 않으니 위스콘신학파이자 경제전문가 출신인 귀하에게 새로운 기대를 걸어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귀하가 최고위원 경선이나 국회 연설, 여야나 당청 협의 등에서 보여준 서민 경제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또한 정치에 몸담은 이후 늘 헌법 제1조의 민주주의, 주권재민의 원칙 등을 생각해왔다는 언급은 좌절과 침체에 빠진 국민에게 신선한 깨달음으로 다가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귀하의 ‘개혁적 보수’ 독트린은 기존 여당에게는 외연 확대의 기회, 야당에게는 따가운 자극이 될 것입니다. 여기에 육군 병장으로 현역 복무를 마친 부분마저도 일반인에게는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2017년을 향해 갈수록 대선주자로서의 인기도 더 가파르게 상승할는지 모릅니다. 기존의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모두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던 중도세력과 정치적 무관심층의 관심이 뜨거워지면 말입니다.

유 전 원내대표님! 그러나 귀하가 아직은 참모형이며 큰 정치지도자로서는 미지수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귀하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도 한 것으로 압니다. 식물로 비유한다면 앞으로 외부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시들고 말 것인지, 아니면 독특한 자신만의 호흡과 생존법으로 일어서서 잡초 못지않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줄지는 모두 자신에게 달렸다고 하겠습니다. 이왕이면 잊혀진 여인처럼 불행한 정치인이 되지 않고 사랑받는 위정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소생이 아무 사심 없이 쓴다고 썼지만, 망발이 아니었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필자의 견해에 잘못이 있다면 많이 꾸짖어주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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