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북한에서 연이은 총살설이 들려오는 가운데 과연 김정은의 살생이 언제 막을 내릴지 걱정이 많다. 이건 ‘백두혈통’이 아니라 ‘백정혈통’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듣는 김정은 기분 나쁘겠지만 이래서 ‘후지산혈통’란 말이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솔직히 일본인들은 과거 우리 민족에 대해, 나아가 중국의 남경학살을 비롯해 얼마나 많은 살생을 감행했는지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먼저 북한 3김씨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 살펴보면 왜 김정은 시대 들어와 살생이 잦은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김일성의 통치 스타일은 “니들이 해봤어?” 즉 솔선수범형으로 이 말을 북한에서는 ‘이신작칙’이라 부른다. 그의 시대 북한사회주의는 나름대로 성장의 길을 걸었고 근대화도 어느 정도 완성됐다. 세습이 문제였다. 김정일은 국민보다 주지육림에 몰두하다보니 “살살해” 매사에 이런 식이었다. 크게 저지르지도 않고 선대 수령의 유산을 고스란히 까먹었다.

빈 금고를 넘겨받은 김정은은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통치스타일은 ‘단번도약’으로 “무조건 해”였다. 대관절 무엇으로 무조건 완성한단 말인가. 70여년간 벌거벗은 산림을 하루아침에 녹화할 수 없었던 내각 산림성 부상(차관)이 총살되고, 과학의 전당 돔을 김일성화 꽃으로 바꾸라는 지시에 예산부족과 공사기간의 토를 단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도 즉각 처형됐다.

김일성에게는 빨치산 전우들이 있었고 김정일에게는 김일성종합대학 동기 동창들이 있었지만 김정일에게는 주위에 우정을 나누고 허심탄회하게 의논할 벗조차 없다. 최고 존엄이 서 있을 토양도 없고, 그의 자양분을 운반할 다리와 줄기도 없으니 ‘단번도약’은 ‘단번처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8개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취임한 뒤 북한 인민무력부장(국방부 장관에 해당)의 평균 재임기간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직후인 2011년 12월 30일 최고사령관에 오른 김정은은 지난달 30일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한 것까지 포함하면 40개월 동안 5명의 인민무력부장을 바꿨다. 국방부 당국자는 “육·해·공군이 있고, 작전과 행정 등 복잡한 구조로 돼 있어서 평생 군 복무를 한 사람도 6개월이 지나야 업무를 파악할 수 있다”며 “평균 8개월 만에 교체했다는 건 ‘일을 할 만하면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인민무력부는 한국 국방부에 해당하는 북한군 행정부처로 김일성 주석 시대에는 총참모부(합동참모본부에 해당)를 산하에 두고 있어 막강한 권한을 휘둘렀다. 그 뒤 김정일이 집권하면서 인민무력부에서 총참모부를 떼어내 전보다 위상이 다소 낮아지기는 했다. 하지만 북한군을 상징하는 존재인 만큼 부장들은 최고지도자의 측근들이 주로 맡아왔다.

국가정보원이 처형당했다고 공개한 현영철도 김정은을 그림자처럼 수행해 왔을 만큼 문고리 권력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2012년 김영춘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정각은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10년이 넘게 근무해 장수가 점쳐졌지만 7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천안함 폭침사건(2010년)과 연평도 포격전을 지휘해 김정일의 총애를 받은 김격식이 뒤를 이었다. 그 역시 6개월 인민무력부장이란 오명을 벗지 못했다. 김정은 시대 인민무력부장들 중 장수한 축에 끼는 장정남은 11개월 동안 버텼으나 결국 상장(별 셋)으로 강등돼 야전부대 군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6월 인민무력부장에 오른 현영철도 10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 같은 인민무력부장의 잦은 교체는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비교된다. 김일성은 집권 46년 동안 인민무력부장을 지낸 이가 5명(최용건, 김광협, 김창봉, 최 현, 오진우)으로 평균 재임기간이 10년에 가깝다. 김정일 역시 17년간 3명에게 군을 맡겼다. 김정은식 공포정치는 겉으로 보면 권력의 강화로 볼 수 있지만 실은 북한 정권이 취약상태에 놓여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공포는 단기간 효과를 낼 수 있지만 곧 분노와 결집, 저항, 혁명이란 수순에 들어가기 마련이다. 특히 군 수뇌부를 흔드는 것은 위험하다. 북한군은 이른바 백두의 혁명정신을 이어주는 ‘혈관’이기 때문이다. 선대가 건너온 피바다를 김정은이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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