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은 김정은의 전승절 기념행사 참가 포기가 북한의 내부사정에 따른 것이라고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전적으로 북한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국방부는 평양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발표를 내놓아 결국 김정은의 국제사회 데뷔전은 북한의 국제외교 미숙함으로 확인되고 있다. 북한은 행사장에서의 김정은 의전과 전투기 지원 등 군사원조에 따른 절충이 저들 뜻대로 진척되지 않자 막판에 판을 깨고 나선 것이다.

최근 15명의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처형됐다는 국정원의 발표로 볼 때 평양에 아무 일이 없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평양은 바야흐로 김정은 통치 4년을 맞으며 뭔가 이상한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북한의 다른 지역과 달리 혼돈과 변화의 갈림길에서 모대기고 있는 평양의 속살을 한 번 들여다보자.

북한의 수도 평양은 북한의 특권층, 이른바 ‘허락받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 특권층이 무슨 음식을 먹고 어떤 종류의 옷을 입는지 등 구체적인 생활상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궁금증을 다소나마 풀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이 최근 정보 당국에 의해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최근 국회 보고를 통해 평양의 특권층의 기준을 ‘미화 5만 달러 보유 및 남한풍 서구식 소비행태를 보이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개성공단의 북측 근로자 5만 3000여명의 평균 월급이 130~150달러(연 1500~2000달러가량)이니까 5만 달러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국가에 납부하는 세금 없이 20년을 넘게 연봉 전부를 모아야 하는 액수이다. 그런데 이 같은 액수를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상당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원은 이들의 숫자를 약 24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약 6만여명의 당, 군부, 국영 기업의 간부들이 있으며 이들의 식구를 4명으로 계산했을 때 이 같은 추정치가 나온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국정원의 정보는 최근 독일 자유대학의 박성조 교수가 주장한 것과 거의 동일하다. 박 교수는 국정원의 국회 보고 약 한 달여 전에 자신이 수집한 각종 정보를 취합해 평양 특권층이 최소 25만명에 이르며 그 기준은 미화 5만 달러의 보유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박 교수가 특권층의 기준으로 주장한 것 중에는 국정원의 보고와 차이가 나는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바로 이들 특권층이 ‘중국에서 수입한 애완견을 보유하기도 한다’라는 부분이다. 물론 모든 특권층이 애완견을 기르진 않겠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 일부라도 ‘삶의 질’을 위해 애완견을 기른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일반 주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얼마나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애완견뿐 아니라 김씨 일가를 비롯해 최고위 특권층의 소비를 위해 지난해 수입된 양주·와인(3494만 달러), 고급시계(1654만 달러), 모피(714만 달러)들의 양도 상당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제1비서 집권 후 집중된 평양의 고층 신축 아파트들도 대부분 특권층을 위한 것이다. 이처럼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김 위원장은 노동당과 군부 등 기득권층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의 외교관들은 평양 대동강변에 늘어선 고층 아파트들을 바라보며 이 일대를 ‘리틀 두바이’라고 부른다. ‘오일 머니’로 인해 부유한 도시의 대명사로 알려진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의 모습과 흡사하다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모처럼 국제무대로 데뷔하려던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은 초기 단계에서 좌초되면서 이제 관심은 다가오는 9월의 베이징으로 쏠리고 있다. 현재 김정은은 시진핑 주석의 행사참석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다. 제 아무리 내부에서 전시형 건물이 올라가고 장마당이 확대돼도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가지 않으면 일장춘몽이다. 이번 모스크바 출현의 좌초에서 우리는 김정은 정권의 어두운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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