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晋)나라의 문공(文公) 중이는 헌공의 아들이다. 중이는 어릴 적부터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 17세 때에 벌써 5명의 뛰어난 심복을 갖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조쇠, 작은아버지 구범, 가타, 선진, 위무지 등이다.

중이가 이미 성년이 됐을 때도 아버지인 헌공은 아직 태자로 있었다. 아버지가 즉위한 것은 중이가 21세 때였다.

헌공 13년에 중이는 아버지의 애첩인 이희의 모략으로 변경 지방인 포 땅으로 밀려가야 했고 그곳에서 진(秦)나라에 대한 방비를 맞게 됐다.

그로부터 8년 뒤 부왕인 헌공은 이희의 간계를 믿고 태자 신생을 자결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이희는 중이와 이오에게도 모략중상을 했다.

그때 도읍에 와 있던 중이는 부왕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포 땅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듬해 헌공은 중이를 암살하라고 그의 측근인 환관 이제에게 명령했다. 중이가 담장을 넘어 도망쳤으므로 환관은 그의 뒤를 쫓아갔다가 결국 소맷자락만을 칼로 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중이는 어머니의 고향인 적나라로 도망했다. 그때 이미 중이는 43세였고 그의 심복 5명 이외에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부하가 수십명이 따라갔다. 

중이가 적나라에 머무는 동안 적나라 왕은 구여를 공격해 구여의 공주 2명을 차지하였는데 언니를 중이에게, 동생을 조쇠에게 시집보냈다. 언니는 중이와의 사이에서 백숙과 숙유 두 아들을 낳았고 동생은 조쇠와의 사이에서 아들 돈을 얻었다.

적나라에 머문 5년째 진(晋)나라에서 헌공이 죽었다. 그때 대부 이극이 기회를 이용해 중이를 왕으로 세우기 위해 태자 해제와 그 아우 탁자를 죽인 뒤 중이를 맞이하기 위해 사자를 보냈다. 꼬임에 빠져 목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중이는 끝까지 귀국을 거절했다.

이극 일당은 어쩔 수 없이 중이의 아우 이오를 맞이해 왕으로 즉위시켰다. 그가 바로 혜공이다.

혜공은 형 중이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즉위한 7년째에 전날의 환관인 이제를 자객으로 보내 중이를 암살토록 명령했다. 그 사실을 알아 챈 중이는 조쇠 등 심복 부하들을 불러 놓고 의논했다.

“내가 적나라에 망명해 온 것은 이곳을 발판으로 삼아 재기하겠다는 뜻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단지 지리적으로 진(晋)나라에서 가깝다는 이유 때문에 단숨에 달려 온 것에 불과했는데 너무 오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큰 나라로 옮겨 갈 생각이다. 그런데 제나라 환공은 경륜이 풍부한 데다가 패자로서 제후를 계속 모으려고 한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제나라의 두 기둥인 관중과 습붕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드시 그들을 대신해서 환공을 보좌할 수 있는 우수한 인재를 찾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제나라야말로 우리가 갈 곳이 아닐까?”

중이 일행은 제나라로 옮겨 가게 되었다.

출발에 앞서 중이는 아내를 불러 놓고 말했다.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올 것이오. 그러나 25년이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도록 하시오.” 그 말에 부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25년이 지나면 제 무덤에는 큰 나무가 서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기다리겠습니다.”

중이는 망명 12년 만에 적나라를 떠났다.

그들은 우선 위나라에 들렀으나 위나라 문공이 냉정하게 대하므로 그곳을 떠났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오록이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였다. 너무나 배가 고픈 나머지 농부에게 먹을 것을 좀 달라고 청했다. 그러자 농부는 토기에다가 흙을 가득 담아 주었다. 중이가 무례한 놈이라고 소리치려 했으나 조쇠가 말렸다.

“흙을 받는다는 것은 머지않아 영토를 받는다는 좋은 징조입니다. 감사의 뜻으로 받아 두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일행은 제나라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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