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헌공 19년에 왕은 우나라 땅을 지나 괵나라를 공격해 하양 땅을 빼앗고 돌아왔다. 어느 날 헌공은 이희에게 태자 신생을 폐하고 이희의 소생 해제를 태자로 봉하겠다고 하자 그녀는 펄쩍 뛰며 만류했다. 이미 신생이 태자라는 것을 천하가 다 아는데 당치도 않다고 했다. 만약 신생을 태자에서 폐하면 자신의 목숨을 끊겠다고 말했다.

그 말은 이희의 교묘한 연극이었다. 겉으로는 신생을 내세우면서도 속으로는 계획적으로 태자의 위신을 떨어뜨리고 자기가 낳은 아들인 해제를 태자로 책봉시키려는 술수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날 이희는 태자 신생에게 이렇게 권유했다.

“지난밤 꿈에 부왕의 베갯머리에 태자의 어머니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어서 서둘러 종묘에 참배하고 제사를 올린 다음 그 제물을 부왕께 올리시기 바랍니다.”

태자는 서둘러 어머니인 제강의 묘가 있는 곡옥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제물로 바쳤던 고기와 술을 헌공에게 가지고 갔다. 그러나 헌공은 사냥을 나가고 없었기 때문에 태자가 가지고 온 고기며 술은 궁중 놓아두게 됐다. 이희는 바로 그 제물에다 독약을 넣었다.

이틀 뒤 사냥에서 돌아온 헌공은 수라상에 차려온 고기와 술에 젓가락을 대려고 했다. 이희가 곁에서 말렸다. “먼 곳에서 가져온 것이니 우선 독이라도 들어 있지 않은가 살펴보셔야 합니다.” 헌공이 술병을 들어 땅에 부으니 땅이 갑자기 끓어올랐고, 고기를 개에게 던져 주자 곧 쓰러졌다. 다시 환관에게 먹이자 그도 쓰러졌다.

이희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태자야말로 잔인하다. 부왕까지 죽이려고 하다니 딴 사람에겐 또 어떤 짓을 할 것인가. 더구나 부왕께서는 앞으로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실 거라고 그것도 기다리지 못하고 살해하려 하다니.”

이희는 다시 헌공에게 말했다. “태자가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소첩과 해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자가 타국 땅으로 가면 되는 일, 그렇지 않다면 서둘러 자결을 하겠습니다. 그러는 것이 태자의 손에 죽는 것보다 낫겠습니다. 왕께서는 태자를 바꾸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소첩은 만류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소첩이 어리석어 이 꼴이 되었습니다.”

태자 신생은 그 소문을 듣자 곧바로 곡옥으로 떠났다. 헌공은 몹시 화가 나서 태자의 시종 두원관을 사형에 처했다. 태자에게 독약 사건을 측근이 일러주었다. “이희가 모두 꾸민 사건인데 어째서 변명을 하시지 않으십니까?”

태자는 몹시 침통해했다. “부왕께서 늙으셔서 이희가 없이는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신다. 그런 부왕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얼마나 충격이 크실까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것이오.”

태자에게 망명을 권유하는 자도 있었다. “그것도 안 된다. 설령 나라 밖으로 탈출한다손 치더라도 이런 오명을 뒤집어쓴 나를 누가 달갑게 맞아 주겠소? 내게 남은 길이란 자살밖에는 없소.” 그렇게 말한 태자는 12월 무신 날 스스로 곡옥의 성 안에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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