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헌공 16년에 주변 국가 곽, 위, 경 등 세 나라를 멸망시키고 귀국한 헌공은 태자인 신생이 있는 곡옥에 성을 쌓게 하고 그를 하군의 장군에 임명했다. 대부 사위가 신생에게 충고했다. 성을 주고 하군의 장군에 임명한 것은 그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군주 자리는 바라지 말라는 뜻이므로 외국으로 망명하라고 일렀다. 태자는 대부 사위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이듬해 헌공은 태자에게 동산 지방의 토벌을 명했다. 이때 대부 이극이 헌공에게 간언했다.
“태자는 종묘사직의 제사를 받들며 또한 아침저녁으로 왕의 수라를 살펴야 합니다. 또 왕이 친히 원정을 떠나실 때는 태자가 나라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태자가 왕을 따라 출전하는 것은 나라 안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에 한합니다. 그때 태자에게는 무군이라고 직함이 주어지며 나라 안에 머물게 될 때에는 감국이라고 불립니다. 이것이 옛날부터의 제도입니다. 모름지기 군사란 독단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군대의 지휘는 왕 또한 재상이 맡으며 태자가 맡을 임무는 아닙니다. 이것을 태자 한 사람에게 맡긴다고 할 경우에 자기 멋대로 명령을 내린다면 그것은 불효라는 죄를 범하는 것이고 또 그렇다하여 하나하나 왕에게 명령을 요청하게 된다면 명령자로서의 위엄이 떨어지게 마련입니다. 아무튼 태자의 입장은 난처합니다. 그래도 좋다는 말씀인지요?”

이극이 간하는 말에 헌공이 답했다.

“내게는 자식이 얼마든지 있소. 또한 태자를 정한 바도 아니오.”

이 말을 들은 이극은 간하기를 포기하고 어전에서 물러나오는 길로 곧장 태자를 찾아갔다. 태자는 이극을 보자 근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태자 자리에서 쫓겨나고 마는 것이오?”

“길은 오직 하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구사의 책임을 맡은 이상 그 일에 온 힘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하면 태자를 폐할 구실이 없어집니다. 지금은 부왕의 기분을 언짢게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자신의 장래에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쪽에서 틈을 엿보이게 하지 않고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는다면 저쪽에서 손을 쓸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왕의 뜻대로 동산 토벌을 출전하는 그날 헌공은 태자에게 편의(왼쪽 오른쪽이 각기 다른 옷)를 입고 옥으로 만든 결(노리개)을 차게 했다. 이극은 병을 핑계로 구실 삼아 종군을 사양했다. 태자의 동산 토벌은 그렇게 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헌공 19년이었다. 헌공은 괵을 쓰러뜨릴 계획을 세웠다.

“괵은 우리 조상인 장공과 전대의 무공이 진(晋)나라의 난리를 진압하려 했던 무렵부터 한결같이 구 진 왕실을 도와 우리에게 대항해왔다. 더욱이 최근에는 옛 진 왕실에서 망명한 공자를 보호하고 있다. 지금 쓰러뜨리지 않는다면 장차 화근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굴산의 좋은 말을 선물로 삼아 신하 순식을 우나라에 보내 진나라 군대가 우나라를 지나가는 것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그 뜻을 우나라가 받아들였으므로 진나라 왕은 괵을 공격해 괵의 하양을 빼앗고 돌아왔다.

어느 날 헌공은 이희에게 은밀히 자기의 뜻을 밝혔다. “신생을 태자에서 폐하고 해제를 태자로 책봉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오?”

이희는 눈물을 흘리면서 헌공에게 간언했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신생 공자가 태자라는 것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뿐만 아니라 태자는 자주 무공을 세워서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저처럼 천한 몸을 위하여 적자인 태자를 폐하고 서자로 태자를 세우신다면 소첩은 스스로 목숨을 끊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희의 교묘한 연극이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