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 耳笑堂에게
김형영(1944~  )
내가 떠나던 날
나는 많이 슬펐다.
그날이 어느새 십 년,
살아서도 바쁘더니
죽어서도 뭐가 그리 바쁘더냐.
내 몸은 백골이 다 되었겠다.
흙으로 돌아가는 너,
네가 부럽다.
내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벗이여!
너를 슬퍼하던 나.
네가 없으니
오늘은 내가 나를 슬퍼해야겠다.

[시평]
이소당(耳笑堂)은 십 년 전에 작고한 시인 임영조의 아호이다. ‘귀로 웃는 사람’이라는 뜻인지, ‘귀가 웃는 사람’이라는 뜻인지, ‘귀로 듣는 말은 모두 웃어버린다’는 뜻인지, 여하튼 늘 말소리가 잘 안 들린다는 듯이, 귀에 손을 대고 반쯤 웃는 얼굴을 들이대고 다른 사람의 말을 듣던 시인 임영조.

친구는 작고한 친구의 10주년을 맞아 친구를 회상한다. 십 년 전 그 모습으로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친구를 회상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제는 백골이 다 되어 흙으로 돌아갔을 친구.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조금은 먼저 흙이 된 친구. 이제 머잖아 흙으로 돌아갈 우리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던 나는, 이제 그 친구는 이미 흙이 다 되어버렸으니, 그래서 없으니, 머잖아 흙이 될 나를 슬퍼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슬퍼할 ‘너’도, 슬퍼해 줄 ‘나’도 없는 오늘, 그래서 오늘 친구는 그 친구를 부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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