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벤치
김신용(1945~ )
혹시 거미줄은
이슬의 벤치가 아닐까
떠돌다 갈 곳이 없어, 쓸쓸히 앉아 있는
가을 공원의 벤치

거미줄은 이슬의, 그런 공원의 벤치가 아닐까

[시평]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에 쳐놓은 거미줄에 이슬이 맺혀 있다. 우리의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에서는 “초롱초롱 거미줄에 옥구슬”이라고, ‘이슬’을 ‘옥구슬’이라고 부르곤 했다. 거미줄에 맺혀 있는 이슬을 보며, 해밝은 아이들은 맑고 투명한 옥구슬을 떠올렸으리라.

그러나 이슬은 흔히 무궁한 우주에 비하여 짧고도 짧은 하찮은 사람의 한 생애로 비유되기도 한다. 아침 햇살이 퍼지면 이내 형체도 없이 사라져버려야 하는 이슬 마냥, 잠시 우주의 시간 속엘 왔다가는 이내 떠나가는 우리네 삶. 그래서 우리들을 ‘여로창생(如露蒼生)’, 이슬과 같은 세상의 사람들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햇살이 퍼지면 이내 사라져야 할, 이슬과 같은 그런 운명의 슬픈 삶이, 이곳저곳 한밤 내내 어둠 속을 정처 없이 떠돌다가, 새벽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 잠시 앉아 쉬는 가을 공원의 벤치. 문득 올려다 본 허공에 덩그마니 처져 있는 거미줄은, 바로 이러한 이슬 같은 삶들이 잠시 앉아 쉬는 그런 벤치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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