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모피아(재경부), 법피아(법조), 정피아(정치권), 세피아(국세청), 해피아(해수부), 교피아(교육부), 국피아(국방부)…’

무슨 ‘O피아’가 이렇게 많은가. 용어 자체가 비속하기 짝이 없고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것 같다. 이젠 또 ‘칼피아(대한항공+마피아)’란다. 신조어가 느는 만큼 퇴직 후 산하기관이나 단체에서 전관예우를 받는 ‘관피아(관료+마피아)’ 비리가 사회 전반에 독버섯처럼 만연돼 있다는 반증일 뿐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 문제가 집중거론됐다. 그러나 그 망국적인 병폐의 뿌리를 뽑아내는 개혁 바람은 미풍에 그쳤다. 실천적인 액션플랜이 없었다. 관피아 인사가 발표되면 해당 기관이나 단체에서 노조 등을 중심으로 조직 전체가 똘똘 뭉쳐 물리력이라도 행사하며 몸으로 밀어내야 할 판이다. 산하기관을 감시·감독하며 행정지도를 해왔던 공직자가 바로 그 산하 피감기관에 내려와 기관 방패막이나 해주면서 백주에 활개치고 다닌다니. 말이 좋아 방패막이이지 사건 브로커나 진배없다. 부처 공무원들은 모두 그 관피아의 후배들이다. 또한 그 후배들은 또다시 노후의 관피아를 겨냥하며 공직생활을 한다. 관피아가 버티는 한 그 기관·단체는 통제불능, 혹은 감독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아까운 나이에 차가운 주검이 되고만 영령들 앞에 우리 모두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할 세월호 참사 같은 사고가 도대체 얼마나 더 발생해야 기성세대가 반성할까. 얼마나 더 통곡해야 그 알량한 기득권을 손에 쥐고 떡 만지듯 주무르고 있는 어른들이 정신차리는 세상이 올까.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 가운데서도 ‘김영란법(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 이해충돌 방지법)’은 또 빠졌다. 세월호 참사 때 ‘과거의 적폐(積幣)’를 지적하며 관피아 척결의지를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야 할 개혁은 반드시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조차 토로한 그 ‘어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같은 날 도하 언론에는 코트라 사장에 산업통상자원부 낙하산 사장 임명가능성이 보도됐는데, 산자부만 해도 유달리 산하기관과 유관단체가 많아 별도로 ‘산피아’라고 불리는 곳인데, 사장에 내정된 모 전 차관은 이 정권 실세라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윤상직 산업부 장관, 새누리당 정책위 부의장 강석훈 의원과 함께 위스콘신대 4인방의 한 사람이라는데, 이 정부에 정말 개혁의지가 있다면 관피아 논란이 왜 다시 일어나는가.

올 한해 우리 국민에게 좌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마다 그 이면에는 민관유착의 뿌리 깊은 부조리가 꿈틀대고 있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도 마찬가지. 국토교통부 조사는 총체적으로 부실했다. 조사관과 대한항공의 유착, 칼피아의 봐주기로 처음부터 제대로 된 조사가 불가능했다. 조사단 6명 가운데 항공안전감독관 2명이 대한항공 출신이었다. ‘짜고치는 고스톱판’ 위에서 시늉만 한 셈이다. 검찰이 최근 발표한 공공기관 비리에 대한 수사 결과는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고질적이고 비정상적인 유착이 얼마나 뿌리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국에서 52개 공공기관 및 산하단체 임직원과 업체 대표 등 390명이 입건되고 이 중 256명이 구속됐다. 임직원들은 공사·납품계약, 직원 채용 및 인사, 연구개발, 대출·금융 등 모든 분야에서 관련 업체 측으로부터 금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기관장은 독과점 구조 속에서도 엉터리 실적평가와 부실한 경영감시 시스템에 편승한 방만 경영으로 재무구조를 악화시켰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쇄신하지 않으면, 또다시 우리 사회를 뒤흔들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불안하다. 관피아 수사는 중단되면 안 된다.

필요한 것은 대수술이다. 철밥통 인사 시스템이 혁파되고 청렴하고 유능한 인재가 적재적소에 배치돼야 한다. 장·차관은 물론,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공공기관장 등 고위직 인사가 투명하고도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천하에 널리 인재를 구해 전문성과 애국심, 리더십을 갖춘 민간인에게도 폭넓게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검은 연결고리를 만들기 위해 검찰청, 국세청, 각 부처 등의 후배들에게 향응을 제공하는 인사들, 군이나 정부 관급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퇴직 공직자들이야말로 볼썽사납다. 그들의 씀씀이는 헤프기만 하다. 그들의 특권은 오버이며, 그들의 무절제한 낭비성 지출은 국민의 피같은 세금의 위법한 전용(轉用)이다. 범위를 넓혀 보면 근절돼야 할 ‘부적절한 관계’는 무수히 많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근본적인 결단이 있어야 답(答)이 나오지 않을까. 힘 있는 인물들이 외부진입을 차단하며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며 특권을 누리는 구조 자체를 깨부숴야 하지 않겠는가. 관피아는 부정부패 비리 등 각종 사고의 뿌리요, 사회 갈등과 반목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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