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유럽의 휠체어농구 프로리그 경기는 인기스포츠에 속합니다. 직접 경기장에 나와 관전해 보면 휠체어농구 특유의 경기 보는 재미에 푹 빠져들 것입니다.”(김장실 대한장애인농구협회장·새누리당 국회의원)

“장애인체전 등 휠체어농구 경기에 관중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흥행성 있는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입니다.”(변효철 휠체어농구연맹 발족준비위원장)

인천삼산체육관의 스타들이 농구공을 안고 다시 뛴다. 한국은 올해 인천세계휠체어농구선수권대회에서 당당 6위라는 빛나는 금자탑을 세웠고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금메달을 목에 거는 쾌거까지 잇따라 달성했다. 두 대회를 계기로 영웅들이 탄생한 데 이어 장애인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 펼쳐진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 필설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혹독한 역경을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감동의 신화를 일궈낸 주역들인 한국휠체어농구 선수들이 계속 운동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됐다. 대한장애인농구협회에 따르면 최근 정기국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상정한 예산(6억원)이 통과됐다. 이에 따라 국내 장애인스포츠 사상 최초로 리그제가 도입돼 이를 주관할 한국휠체어농구연맹이 24일 국회에서 발기인 총회를 갖고 1월 정식 출범한다. 에이스 김동현, 세계적인 포인트가드 오동석, ‘마당쇠’ 김호용, ‘사고뭉치’ 조승현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활약을 가슴 뛰는 흥분과 함께 마음껏 응원하며 즐길 수 있는 역사적인 로드맵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장애인스포츠의 꽃’으로 불리는 휠체어농구경기는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과 미국에서 상이군인들의 재활을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다. 1973년 벨기에에서 국제대회가 처음 개최됐고, 1986년 5회 대회부터는 월드컵이 4년마다 열린다. 한국의 역사는 일천하기 짝이 없다. 1997년 대만에서 개최된 지역 예선전을 거쳐 1998년 호주 시드니 세계선수권대회에 처음 참가했다. 그랬던 한국이 2010년 영국에서 있었던 세계휠체어농구연맹(IWBF) 총회에서 세계대회를 유치했고, 올해 인천세계선수권대회를 성공리에 치러냈다. 모두가 고사한 대회조직위원장직을 떼밀리듯 맡아 IWBF로부터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멋진(perfect and fantastic), 역대 최고의 대회”라는 찬사를 들은 김장실 의원은 “최근 오동석, 조승현 등 휠체어농구 선수들이 프로농구 대회에 시투자로 나서기도 했고, 팬들의 사인공세도 이어지고 있다”며 “리그제 도입과 실업팀 창단에 뜨거운 관심과 후원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일본만 해도 실업팀이 100개가 넘지만 국내에는 실업팀(서울시청)이 하나뿐이다. 열악하기만 한 현실의 한국이 세계대회 6위, 아시안게임 우승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대부분의 국가대표 선수들이 일과 농구를 병행하고 있는 ‘주경야독파’. 예컨대 조승현 선수는 커피전문점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고, 김호용 선수는 성남의 한 휠체어제조공장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선수층이 두텁지 못해 대회 때는 매일 지속되는 경기 일정에 베스트 5의 체력이 바닥이 난다. 국가대표팀 한사현 감독은 “선수들이 부상과 피로누적으로 힘든 상황이었지만 두 대회에서 빛나는 투혼을 보여줬다”며 “휠체어농구의 저변이 확대된다면 향후 언젠가는 프로스포츠화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리그제는 연고지를 기반으로 해 4~6개 팀 창단을 목표로 추진된다. 리그는 현재 비시즌인 12월~3월 중 3개월 15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팀별 2회씩 맞붙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올스타전과 휠체어농구 체험 등의 이벤트, ‘휠체어농구 명예의 전당’ 설립도 추진된다. 리그제 도입의 일차적인 목적은 지체장애인들의 재활을 돕는 것이지만 나아가 장애인고용과 장애인복지라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열매도 겨냥한다. 선수들의 생계를 보장하고 지속적인 훈련을 보장해 경쟁력을 높여 장애인들이 보람된 제2의 삶을 누리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다.

벌써 20년 전 일인가. 필자는 스페인의 시각장애인단체 ‘온세’를 직접 취재해 기획기사를 게재한 적이 있다. 온세는 스페인 내란 때 눈을 다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 복권 사업을 시작하면서 1939년 설립됐다. 온세는 이 복권을 판매해 얻은 수익금으로 각종 장애인 보장구는 물론, 장애인들의 사회적응을 위한 교육훈련을 전국의 모든 장애인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장애인이란 비단 시각장애인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 휠체어농구에 리그제가 도입돼 그 경기 수익금으로 장애인들의 재활과 취업을 돕는 직업교육훈련 센터라도 설치하면 일석이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인들이 본받을 만한 모범사례로 한국이 새 역사에 기록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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