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이 10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에 하기로 합의한 ‘2차 남북고위급 접촉’이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일단 우리 정부가 제의한 10월 30일 일정은 무산됐다. 당초 합의대로라면 시간이 조금 더 남아 있긴 하지만 분위기는 좀처럼 대화국면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설사 이런 상황에서는 남북이 만나더라도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모처럼만에 형성된 남북 대화국면이 이대로 끝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북한 국방위가 29일 ‘(남쪽이 30일로 제안한) 고위급 접촉을 개최하겠는지, 전단 살포에 계속 매달리겠는지는 남쪽 선택에 달려 있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보내왔다. 마치 북한이 최후통첩을 하는 듯한 모양새가 보기가 좋지 않다. 게다가 고위급 접촉의 성사 여부를 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과 결부시키는 전략은 그들의 표현대로 ‘통 큰 결단’이 아닐 뿐더러 명분치고는 너무도 약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어떻게 남북관계의 ‘대통로’를 열어가자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북한을 비난만 하기엔 우리 정부의 태도도 적잖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정말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추진코자 한다면 그에 맞는 조건부터 차근차근 정비해야 한다. 그게 대북정책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접근의 기본이다. 우리 정부의 입장부터 오락가락한다면 남북관계는 다시 상호비난과 대치상황을 면키 어렵다. 북한의 비상식적인 태도만 비난한다고 해서 일이 잘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정부가 ‘표현의 자유’ 운운하며 사실상 손은 떼는 모습은 적절치 않다. 마치 무슨 이벤트라도 하듯이 국민여론은 나 몰라라 하는 이들의 행태를 그냥 구경만 하겠다는 것인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데도 ‘표현의 자유’만 거론하면 그걸로 끝이란 말인가. 만에 하나 북한 도발이 현실화되면 그 때는 북한과 전쟁이라도 하겠다는 뜻인지 묻고 싶다. 북한의 기관총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일이며 게다가 박근혜 정부가 표방한 남북관계의 신뢰구축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괜히 북한 도발의 명분만 줄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남북관계를 조금만 더 크게 보자. 지금 러시아는 북한에 대규모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그것도 북한의 천연자원과 철도사업에 대한 투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중국, 러시아, 심지어 일본에게도 빼앗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일이다. 이처럼 엄청난 국가이익은 뒤로 제쳐놓고 지금 우리끼리 대북전단 살포를 놓고 찬반 갈등만 반복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